그 무렵 1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그때에 35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떤 세계적인 부자가 기자들의 이러한 물음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행운이죠. 두 번째도 행운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행운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행운을 이용할 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부를 축적한다는 것. 이 부자의 말처럼 분명히 행운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에서 성공한 기업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서도 이 말이 입증됩니다. 이 천 명 중에서 계획적으로 노력해 성공을 거둔 사람은 단 25%에 지나지 않았으며, 글쎄 나머지 75%는 우연한 기회에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주어지는 행운으로 성공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행운은 모든 이들에게 크든 작든 어떻게든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행운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성공한 사람과 보통사람의 차이가 구별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신앙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주님으로부터 우리들 모두 넘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은총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감사하고 잘 활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 결과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적은 은총이 주어졌다면서 불평불만 속에 빠지고 말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메시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라는 희망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단순히 행운만을 쫓는 어리석음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그 행운처럼 보이는 주님의 은총을 잘 이용하는 진실로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는 그녀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불평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일과 같다. 나는 라디오를 켤 수도 있고, 켜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늘 켜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2차 세계대전 안에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긍정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지요. 그녀의 글을 보면서 행복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우리가 잘 아는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바로 ‘불평’이었습니다.
하루를 되돌아보는 순간에 제일 후회되는 것은 사실 이 불평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는 이 불평을 왜 간직하며 살까요?
이제는 주님의 은총에 불평보다는 감사할 수 있도록, 또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개미눈물 꽃>
요즘 계속되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 강조하고 계십니다.
은혜롭게도 그 생명의 빵은 아직까지도 매일 우리에게 나눠지고 있는데, 그 나눔은 지상에서 우리가 거행할 수 있는 가장 은혜롭고 축복된 성사인 성체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살레시오회 창립자 성 요한 보스코는 위대한 청소년 교육자, 일의 성인으로 유명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체성사의 성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창안한 탁월한 청소년 교육 방법인 ‘예방교육’의 중심에 성체성사를 두었습니다.
그는 매일의 미사를 마치 자신이 이 땅에서 바치는 마지막 미사처럼 아주 정성껏 봉헌했습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경건하고 진지했던지 미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현존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미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삶을 바꾸었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온 마음과 몸 전체, 온 신경과 정신 전체를 다해 정성스럽게 봉헌했던 미사는 성 요한 보스코 자신의 하루는 물론이고 그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하루를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미사에서 받은 은총과 에너지로 고된 하루를 기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계속 우리 손바닥 위로 내려오시는 생명의 빵이신 성체는 우리를 죄의 종살이 땅에서 자유의 땅으로 건너가게 하는 기적의 원천이 틀림없습니다.
매일 정성껏 영하는 성체는 우리의 흔들리는 삶을 붙들어주는 든든한 지주임이 틀림없습니다. 매일 고통과 시련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성체성사만큼 큰 힘과 위로를 주는 성사는 다시 또 없습니다.
성체성사는 내가 아무리 큰 죄인이어도, 내가 아무리 방황하고 흔들려도, 나란 존재가 아무리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존재라 할지라도 나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나를 향해 미소 짓게 만듭니다. 나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내 삶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매일의 성체는 우리의 삶의 질을 한껏 드높입니다. 매일의 성체는 우리의 삶을 성화시키고 새롭게 재창조하십니다. 매일의 성체는 우리 존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오르지 못할 산, 신기루 같은 세상 것에 너무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 대신에 ‘너무 소중한 나’, 매일 내게 다가오시는 ‘또 다른 하느님이신’ 성체에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작은 꽃은 너무나 불행했습니다.
주변의 다른 꽃들은 모두 크고 아름다운데 자기만 작고 초라했으니까요.
작은 꽃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매일매일 괴로워하다가
힘이 빠져 점점 아래로 쳐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신보다 훨씬 작고 볼품없는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
그 더 작은 꽃이 작은 꽃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넌 정말 크고 예쁘구나.”
더 작은 꽃의 칭찬에 신이 난 작은 꽃은 한껏 뽐냈습니다.
계속해서 더 작은 꽃이 물었습니다.
“내 이름은 개미눈물 꽃인데, 네 이름은 뭐니?”
작은 꽃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했을 뿐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본적도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