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2010. 11. 3. 오전 5: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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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필리피 2,12-18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7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18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여학생들이 장래 남편감에 대해 내세우는 조건은 이렇다고 합니다.

나만 사랑하고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남자, 신체 건강하고 머리 좋은 남자, 돈을 많이 버는 남자, 유머 감각이 풍부한 남자, 가사 일을 즐겨 하는 남자, 두말없이 우리 부모님을 부양하는 남자, 내가 야단칠 때 말없이 앉아 있는 남자, 내 독립적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남자, 애 잘 키우는 남자,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요리하고 집 안을 치우는 남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닝커피를 만들어 침대로 가져다주는 남자, 내 잘못을 이해해 주는 남자, 더러운 버릇이 없는 남자, 나의 사교 생활을 이해해 주는 남자, 예쁜 여자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남자, 여자 화장실 앞에서 내 핸드백 들고 서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

이밖에도 장래 남편감에 대한 조건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조건들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이 조건에 합당한지를 따져보았습니다. 저는 조건 이하의 남성이더군요. 그렇다면 반대로 남자들은 어떨까요? 무조건 사랑만 하면 장래 아내로 합당하다고 그럴까요? 남자들 역시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면상의 한계 때문에 남자들의 조건들은 여기서 빼도록 하겠습니다(솔직히 저도 남자지만 이렇게 까다로울까 싶습니다). 하긴 전에 어떤 자매님의 이러한 푸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저희는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달랐던 것 같아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제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이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 살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나의 기대만을 채워주길 원해서 결혼한다면, 굳이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줄 하인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비록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이 하더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낮추면 낮출수록 사랑의 관계는 더욱 더 두터워집니다.

이러한 인간관계를 떠올리면서 주님과의 관계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과 두터운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무조건 다 해달라고 청하고, 주님께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던지면 과연 사랑의 관계가 과연 형성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앞서 나를 낮추면 낮출수록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나를 주님 앞에 낮추고 대신 주님을 들어 올릴 때 비로소 주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가 두텁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을 낮추는 사랑.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주님을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될 때,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들 모두 한 형제자매가 되어 주님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가난과 기쁨이 있는 곳에는 탐욕도 인색함도 없다(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인생찬가(H.K.롱펠로우)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한낱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영혼은 죽는 게
아니고 잠드는 것이니 만물의 본체는 외양대로만은 아니란다.

인생이란 실재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우리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본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인생이니라.

예술은 길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나니, 우리 가슴이
설령 튼튼하고 용감하더라도, 마치 천으로 감싸진 북과 같이
둔탁하게 무덤을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 안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억척같이 싸워 이기는 영웅이 되라.

미래를 믿지 말라, 비록 그것이 즐거울지라도!
죽은 과거는 죽은 채로 묻어두라!
행동하라, 살고 있는 현재에서 행동하라!
가슴속에는 용기를, 머리위에는 신을!

위인들의 모든 생애는 말해 주나니,
우리도 위대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이 세상 떠날 때는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아마도 후일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외롭게 난파한
그 어떤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그런 발자국을,

자, 우리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하자.
그 어떠한 운명도 헤쳐 나갈 정신으로, 끊임없이 성취하고
추구하면서 일하고 기다리기를 함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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