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2010. 8. 25. 오전 5: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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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테살로니카 2서 3,6-10.16-18

6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7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오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어떤 할아버지께서 여러 해 동한 심한 청각장애를 겪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직접 의사를 찾아가서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완벽하게 들을 수 있는 보청기를 다셨습니다. 한 달이 지나 할아버지께서 그 병원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지요.

“청각이 완전하게 돌아왔군요. 이제 다시 들으실 수 있게 되었으니, 가족들이 정말로 좋아하시겠네요."

이에 할아버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니오. 가족들한테는 제가 보청기를 했다는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가만히 앉아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기만 한답니다. 그동안 유언장을 세 번이나 고쳤어요.”

할아버지가 유언장을 세 번이나 고쳤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족들이 할아버지가 듣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아무렇게나 이야기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할아버지가 듣든 듣지 않든 변함없는 모습으로 다가서야 하는데, 듣지 못하시니까 아무렇게나 말했고 이를 통해 큰 상처를 받으셨던 것이었지요.

이러한 위선을 우리도 종종 갖게 됩니다. 즉, 겉으로는 그럴싸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온갖 더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불행하다.’ 라고 선포를 하시지요.

복음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먼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무덤은 죽음과 닿아 있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무덤에 횟가루를 뿌림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도 그것을 알아보고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즉, 겉은 회칠을 해서 그럴싸해 보이지만 역시 부정한 무덤에 불과한 것인데, 우리 역시 겉만을 꾸밀 뿐 가장 중요한 마음은 아무렇게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조상들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조상 못지않은 잘못된 판단으로 악행을 계속하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남을 평가할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남을 평가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주님은 ‘불행하다’고 선포하십니다. 단순히 말로만 불행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하느님께서 받아주시지 않기 때문에, 그럼으로 인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참으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불행의 길로 가고 있나요? 아니면 행복의 길로 가고 있나요?

겉과 속이 일치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남을 평가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부터가 올바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주님께서 제시하신 진리의 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 되돌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헨리 포드).



눈물 흘리는 영의정(‘좋은생각’ 중에서)

선조, 광해군, 인조 세 국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으며 영의정을 다섯 번이나 지낸 이원익은 조선 중기의 난국 속에 보기 드문 충신이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한창 어지러운 시국이었다. 새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는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했다. 당시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들은 광해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원익은 광해군 밑에서 영의정을 지낸 자신도 떠나야 한다는 말로 인조를 설득해 광해군의 목숨을 구했다.

얼마 뒤 인조는 이원익에게 광해군 시절,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세도가들은 이원익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하루는 어느 세도가의 첩처럼 보이는 여인이 이원익의 집을 찾아왔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질문에 여인은 그에게 작은 보따리를 내밀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값비싼 구슬이 박힌 신발이 나왔다. 곧이어 여인은 제발 자기 주인을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 말 없이 보석 신발을 보던 이원익의 눈에서 갑자기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뜻밖의 모습에 당황한 여인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신하의 집에 이렇게 귀한 보석이 있었으니, 어찌 나라가 어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헐벗은 백성들이 굶어 죽는 마당에 한낱 첩에게 이런 신발을 신기고도 살기를 바라다니!”

이원익은 당장 그 신발을 가져가게 한 뒤, 그 세도가에게 엄한 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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