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2010. 8. 11. 오전 6: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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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1독서 에제키엘 9,1-7; 10,18-22

1 주님께서는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복음 요한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형제님께서 운전하시는 차에 탄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이름 있는 직장을 다니시는 형제님이셨지요. 그런데 차를 함께 타면서 이제까지 못 봤던 형제님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글쎄 평소에는 차분하시고 남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는 분인데, 운전을 너무나도 급하게 하시면서 화도 잘 내시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차에 대해 화를 많이 내시더군요.

왜 화를 내셨을까요? 그 끼어든 차가 정말로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 때나 끼어드는 못된 운전자는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면 안 돼.’

‘앞의 운전자는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해서는 안 돼.’

많은 운전수들이 고작 한 번 끼어들기 한 것을 가지고서 이렇게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운전하는 사람치고 단 한 번도 끼어들기를 해본 적이 없을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우리 주님께서 가장 경계하시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죄 짓는 사람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즉, 형제를 교정하는 3단계 절차를 말씀하시는데요. 1단계는 형제적 사랑의 권고입니다. 1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 2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는 증언을 통해 공식화를 시킵니다. 그리고 이번 단계에서도 실패하면,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 교회에 알려 처벌을 하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자그마한 머리로 곧바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이기적인 우리들의 모습과는 달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3단계에 걸쳐 기회를 주는 진정한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자만 하는 신앙을 금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기도를 생각해보세요. 주로 어떤 기도를 바치게 됩니까? 자기에 관한 소원성취에 대한 기도가 빠짐없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즉, 이기심이 발동하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둘이 뜻을 모아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남을 바라보게 되는 이웃사랑에 중심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대신 진정한 이웃 사랑을 기억하며 교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혼자서 기도하기 보다는 함께 기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나 혼자서 판단하고 단죄하기 보다는 공동체가 함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춤에서처럼 삶에서도 우아한 동작은 물집 생긴 발에서 탄생한다(엘리스 아브람스).



용서의 계절(이해인)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시간을 알뜰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쓸데없이 허비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 삼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듣는 일에 소홀하며 건성으로 지나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내가 어쩌다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남의 흉을 보고 때로는
부풀려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나의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교묘하게 되풀이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소한 일로 한숨 쉬며 실망하며
밝음 웃음보다는 우울을 전염시킨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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