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2010. 7. 30. 오전 6: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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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레미야 26,1-9

1 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집 뜰에 서서, 주님의 집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
3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거두겠다.
4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둔 내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5 또 내가 너희에게 잇달아 보낸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사실 너희는 듣지 않았다. ─ 6 나는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7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은 주님의 집에서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8 그리고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온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마쳤을 때,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9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복음 마태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일 것입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셨지요.

“너희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한 명 한 명에게 장래희망을 말하도록 했습니다. 저의 차례가 왔고, 저는 자신 있게 “신부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그 순간 반 친구들이 웃으며 말합니다.

“너 남잔데 신랑이 되어야지. 어떻게 신부가 되니?”

“네가 무슨 신부님이 된다고 그래? 네가 신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사실 저 역시 당시의 아이들처럼 장난이 많았고 공부도 그리 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를 쭉 봐왔었던 반 친구들은 그래서 제가 신부님이 될 리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도저히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렇게 신부로 10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잘 모르는 것이 바로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도 많이 아는 것처럼 부풀리면서 상대의 성장을 가로 막는 것은 물론, 이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이 얻을 이익까지도 막을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로 이러한 판단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제일 오랫동안 봐왔다고 말할 수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만 하셨지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봐왔으며,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에 딴죽을 겁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좋은 일을 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부정적인 판단으로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는 고향 사람들.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믿음보다는 의심을 갖게 했으며, 사랑보다는 미움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기적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누릴 이익까지도 얻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섣부른 판단으로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날 하느님의 영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과 섣부른 판단은 이제 우리에게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을 더욱 더 충만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은 영혼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랑의 그물입니다(마더 데레사).



나아짐을 축하하라(‘행복한 동행’ 중에서)

스스로를 신이 최초로 창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오스틀로이드 족’. 이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광활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횡단한다.

백인 여의사인 말로 모건이 이들과 함께 대륙 횡단 여행을 할 때였다. 사막을 걷다가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모건은 생일 때 축하 노래를 부르고 파티를 여는 자국 문화를 설명했다. 그때였다. 원주민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요? 축하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것 아닌가요?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축하할 일이라도 되나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잖아요. 그냥 저절로 먹는 거니까요.”

원주민의 말에 당황한 모건이 반문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무얼 축하하죠?”

“우리는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합니다. 물론 축하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지요. 그래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바로 자신뿐이에요.”

모건은 원주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깨닫고 축하하는 원주민의 삶에서 깊은 지혜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으레 먹는 나이를 축하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감을 축하해야 한다.


댓글 1

  • 2010년 7월 30일 오전 10:51

    That's inspiring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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