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0/5)

2004. 10. 5. 오전 8: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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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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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갈라디아 1,13-24
형제 여러분, 내가 전에 유다교 신자였을 때의 소행은 여러분이 다 들었을 터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 하였습니다. 아니,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다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 주셨고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이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나를 직접 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전에 자기네를 박해하고 그 교를 없애 버리려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하는 일을 두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복음 루가 10,38-42
그때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겪은 일 하나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서 표를 끊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 전철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약간의 연착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이렇게 안 와~~” 하면서 말이지요(사실 저 역시 그런 투덜거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철을 기다리는 수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전철이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그 전철을 타기 위해서 필사적입니다. 저 역시 그 필사적인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그 전철의 빈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아쉽게도 타지 못했지요. 바로 그 순간, 이런 방송이 들립니다.

“뒤에 바로 열차가 오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방송을 듣고는 복잡한 만원 전철을 타지 않았습니다(사실 그 복잡한 전철을 탈 능력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전철이 왔는데요, 이 전철은 앞 전철과는 달리 텅텅 빈 것입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제가 앉아서 전철을 타고 올 정도였다니까요.

조금만 기다리면 편안하게 올 수 있는 것을 그 잠시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합니까? 우선 불편하게 전철을 타고 있으니 고생이지요. 또한 불편하니 마음에서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잠시만 불과 3~4분만 기다려도 이렇게 편안하게 타면서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결국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면서 동시에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나의 서두름. 즉 여유 없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잠시의 시간도 여유를 두지 못하고 사는 모습들,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행하고 있는 서두름이 내 자신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이 두 자매의 모습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시중드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그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 자기를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가 무척이나 못마땅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편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마르타는 앞서 그 복잡한 전철을 타기 위해서 필사적인 사람들의 모습처럼, 바로 눈앞의 일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썼던 것이고, 또한 사소한 것에 불평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둘러서 눈앞의 일만을 바라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전체를 보면서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나요? 눈앞의 일에만 걱정하는 마르타의 모습인가요? 아니면 바쁨 안에서도 여유를 갖고 주님 곁에 머무르려는 마리아의 모습인가요?


바쁘세요? 아무리 바뻐도 주님 앞에서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메모하는 습관(행복한 동행 중에서)

현대인이 정보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남보다 두뇌를 활성시키는 것이다. 두뇌를 잘 활용하려면 이를 기억과 저장의 기능으로 쓰지 말고 창조적으로 써야 한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을 인터뷰하던 기자가 전화번호를 묻자, 아인슈타인은 수첩을 꺼냈다.

기자가 깜짝 놀라서 "설마 댁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시죠?" 하고 물었더니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적어 두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뭣하러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합니까?" 아인슈타인이야 말로 두뇌를 창조적으로 활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일화다.

기록하고 잊어라. 안심하고 잊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항상 머리를 창의적으로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 비결은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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