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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일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서 동정 학자 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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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66,10-14ㄷ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아, 기뻐 뛰어라. 예루살렘이 망했다고 통곡하던 자들아, 이제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너희가 그 품에 안겨 귀염 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리라. 그 풍요한 젖을 빨며 흐뭇해하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평화를 개울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하리라. 젖먹이들은 그의 등에 업혀 다니고, 무릎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이를 보고 너희는 마음이 흐뭇하며, 뼈마디가 새로 돋은 풀잎처럼 싱싱하게 되리라." 당신의 종들에게는 주님의 손길이 이렇게 나타나리라.
제2독서 고린토 1서 7,25-35 형제 여러분, 미혼 남녀에 관해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지시하신 바가 없으므로 내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이므로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을 생각한다면 남자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와 헤어지려고 하지 말고 아내가 없는 사람은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남자가 결혼한다고 해서 죄를 짓는다거나 처녀가 결혼한다고 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혼한 사람들은 세상 고통에 시달릴 터이므로 여러분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말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근심 걱정을 모르고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쓰게 되어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나 처녀는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을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아름답게 살며 딴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
복음 마태 18,1-5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대답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며칠 전, 저의 누님으로부터 하나의 특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체중조절’이었지요. 바로 살을 빼라는 것입니다. 지난 저의 영명축일에 맞춰서 누님께서 바지 하나 사주겠다고 허리 사이즈를 말하라고 합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허리 사이즈를 잘 몰랐거든요. 작년 초에 바지를 직접 샀을 때의 사이즈는 ‘31’이었지만, 지금 제 몸의 상태가 많이 불었기 때문에 허리 사이즈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지요. 그래서 약간 크게 불려서 ‘33’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영명축일에 누님께서 오셔서 ‘33’ 사이즈 바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바지가 꽉 끼는 것입니다. 결국 누님께서는 한 치수 더 큰 것으로 바꿔 오겠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지난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꾼 바지를 다시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꽉 끼는 것이었어요. ‘34’ 사이즈였는데 말이지요.
그 순간 누님의 말씀…….
“이제 옷 못 바꿔. 네 몸을 바지에 맞춰~~”
하긴 요즘에 맞는 옷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입는 바지는 고무줄 바지이지요. 따라서 전에 입었던 바지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답니다.
체중 ‘80㎏’에 허리사이즈 ‘35inch’ 그런데 제가 스모선수처럼 살 좀 찌겠다고 다짐을 하고서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배 나온 사람들이 주로 말하듯이, 일방적으로 배 근육을 키운 것일까요? 또 배가 나오는 것은 인격이라는 말처럼, 그 인격을 내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살을 키운 것일까요? 모두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그냥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은 요즘 사회에서 말하고 있는 ‘몸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이 ‘몸짱’이 되겠다고 했지만, 제 몸에 스스로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이렇게 무식하게 변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 몸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이렇게 대책 없이 몸이 변하는 것처럼, 주님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내 영혼도 이렇게 대책이 서지 않을 정도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이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내 영혼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데 주력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악(惡)을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예전의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제가 예전에 이런 인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보가 되십시오.”
저는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바보란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야 말로 바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약간 미성숙하게 보이고 어수룩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바라볼수록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런 어린이가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 바보의 모습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방심하다가는 저처럼 원치 않는 모습이 될 수도 있거든요.
바보가 됩시다.
사랑해야 할 일상의 깨달음(‘사랑은 사흘분의 설탕이에요’ 중에서) 살아가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 벅찬 감정이 인생에 희열을 안겨주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꿈의 성질이 어떤 것이든 인간은 꿈을 꾸는 한 아름답습니다 꿈은 팽팽한 현악기처럼 아름다운 음률을 내기 위해 삶을 긴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작은 것까지 모두 아름다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욕심내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며 종착역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험악한 바위틈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을 볼 수 있음이 삶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리웠던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보면 마음이 마냥 푸근해 집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어줄 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었다면 그 사랑은 참 사랑일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를'나'답게 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그'답기를 격려해 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썰물과 밀물의 때가 서로 교차합니다. 절망의 풍경속에서도 희망은 기다림으로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