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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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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욥기 19,21-27 욥이 말하였다. "벗들이여, 불쌍하고 가련하지 아니한가!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는데, 어찌하여 자네들마저 하느님처럼 나를 구박하는가? 그만큼 헐뜯었으면 직성이 풀릴 만도 하지 않은가? 아, 누가 있어 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있어 구리판에 새겨 두랴? 쇠나 놋정으로 바위에 새겨, 길이길이 보존해 주랴?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려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 그러나 젖먹던 힘마저 다 빠지고 말았구나."
복음 루가 10,1-12 그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마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그러나 어떤 동네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길거리에 나가서 '당신네 동네에서 묻은 발의 먼지를 당신들한테 털어 놓고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만은 알아 두시오.' 하고 일러 주어라.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날이 오면 소돔 땅이 그 동네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뭐 해 먹을까 궁리하고 있었지요. 뭐 특별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우선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닭 강정이 있더군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그래도 버리기 아까워서 전자 레인지에 넣고 데운 뒤에 먹었습니다. 냉장고에 있은 지 거의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상하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처음에 닭 강정을 가져왔을 때의 맛과 지금의 맛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 더 맛있을까요? 당연히 금방 해서 바로 먹는 것이 더 맛있겠지요.
냉장고에는 오래 놔두어도 괜찮지만 실온에서 보관하면 음식은 금방 상하게 되지요. 그러나 냉장고에 오랫동안 보관된 음식은 지금 내가 엄청나게 배고프지 않고서는 그리 맛있지가 않은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우리 신앙인들과 주님의 관계에서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당신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는 노력을 하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노력 하는데 얼마나 주저하고 있는지요. 또한 얼마나 많이 그런 노력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까? 이런 모습이 어쩌면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고서 나중에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음식은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꺼내 먹을 때의 맛은 어떨까요? 아까워서 먹는 것이지,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겠지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곧바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고 뒤로 미룬다면 나중에 주님의 뜻을 실천해도 별다른 감응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당장. 지금 곧바로 실천하지 않고서는 그 뜨거운 감응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제 새벽 글을 통해서 제 자신을 반성하였지요. 즉, 받는 데만 익숙해져 있던 내 자신을 반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사람들에게 문자도 보냈고, 아울러 메일 답장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했습니다(혹시 제게 메일이나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으신 분들은 연락바랍니다). 물론 귀찮은 작업이었고, 안하다가 해서 그런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 살아야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힘들어도 인내를 가지고 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시 곧바로 회신을 보내주세요. ‘고맙다’고. 저야 그냥 답변만 해 준 것뿐인데 그렇게 감명을 받는다는 사실이 저를 깜짝 놀라게 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왜 이제까지는 하지 않았는가 라는 후회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새벽 글을 쓰고서도 힘들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평소와 같이 뒤로 미루었다면 어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 실천은 이렇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 중에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똑똑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파견에 대해서 거부를 하지 않지요. 곧바로 주님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실천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즉각적인 실천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더 많은 은총과 사랑을 주신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아는 분에게 받은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꼭 합시다.
'꽃삽' 중에서(이해인 수녀) 나의 밭에는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 늘 열려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누워 있는 밭 그러나 누군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 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밭 매일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삶도 어쩌면 새로운 밭과 같은 것이 아닐까 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매일 살 수 있어야겠다.
매일이라는 나의 밭에 나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여러 종류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익한 명상의 씨를 더 많이 뿌리는 날도 있으리라.
아름다운 말의 씨를 뿌릴 때가 있는가 하면 가시돋힌 말의 씨를 뿌릴 때도 있으며 봉사적인 행동으로 사랑의 씨를 뿌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이기적인 행동으로 무관심의 씨를 뿌린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밭 모양도 달라지는 것일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