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작은 길

2010. 10. 3. 오전 6:45:23

글자
 



사랑의 작은 길
      글 :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 나의 삶에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특히 사랑하는 두 여성이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늘 내 가까이 머물며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한 분은 일생을 독신으로 고향집에 숨어살며 수없이 아름다운 시들을 써낸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이고, 또 한 분은 그르멜 수녀원 안에서 죽는 날까지 사랑과 기도의 삶에 헌신한 프랑스 리지외의 성녀, 예수 아기의 데레사 수녀이다. 디킨슨은 늘 고독을 사랑했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해서 '수녀' '하얀 나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유난히 제비꽃을 사랑했던 데레사는 자신을 작은 꽃에 비유해서 그의 이름 앞엔 늘 소화小花 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디킨슨의 시들이나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을 때마다 나는 우리가 놓쳐 버리기 쉬운 사소한 것들을 깊이 꿰뚫어본 그들의 예민성과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전 우주와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안은 대담한 단순성의 용기에 탄복하게 된다. '나는 한번도 하느님과 얘기한 적이 없어요. 하늘나라를 가본 적도 없어요. 그러나 그곳을 똑똑히 알아요. 마치 도표가 주어진 것처럼'이라고 노래하는 디킨슨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눈이 멀게 되면 나는 신앙으로 보겠다. 나의 담갈색 눈은 닫혀질 때가 있어도 기억은 덮개가 없다 가끔 감각이 온통 흐려져도 나는 보게 된다 마치 누가 다정한 모습에 불빛을 켜들듯이 '사랑에 의해서, 사랑을 위해서 행한다면 무엇 하나 작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구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못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원의原義에 앞질러 가기까지 해야 합니다'라고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 데레사의 모든 말 또한 나를 사로잡는다. '나의 작은 길에는 온전히 보통 것밖에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그녀의 생애가 참으로 위대한 것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극히 하찮고 평범한 이들을 비범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데 있다. 다른 사람의 원의까지도 앞질러 알아듣고 실천하는 애덕이란 때로 영웅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그녀가 제시한 '사랑의 작은 길'은 사실에 있어 작은 길이 아님을 느낀다. 자신의 내면을 투시하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한결같은 믿음과 확신을 갖는 것, 일상의 소임을 지극한 인내와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 등이 차츰 어려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디킨슨과 데레사의 정신은 새로운 의미를 시사해 준다. 이들의 시나 삶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나는 매일의 삶 안에서 우선 작은 기회부터 놓치지 않는 사랑의 실천가가 되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오고 있다. 오늘 아침, 방 청소를 하다가 내가 머무는 수도원의 작은 공간이 문득 궁전처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십자가, 성모상, 읽다가 펼쳐둔 책, 타다 남은 초, 몇 개의 시어가 적인 메모지와 연필통, 솔방울과 낙엽 등 내가 눈으로 길들여 놓은 사소한 물건들조차 더없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을 새롭게 기뻐하고, 새롭게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작은 것들을 늘 소중히 여기고, 놀라워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사랑하리라. 이러한 삶의 체험에서 때로 노래와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면 그들을 모아 두었다가 시로 탄생시키는 즐거움도 맛보리. (1987) 「꽃삽」中에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