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인간 이병철 "신이 인간 사랑했다면 왜…"

2012. 5. 31. 오전 6: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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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인간 이병철 "신이 인간 사랑했다면 왜…"

[중앙일보] 입력 2011.12.17 05:00 / 수정 2011.12.17 08:59

천국 가기 힘들다는 부자, 악인인가

이병철 회장, 타계 한 달 전 24개 영적 질문 … 차동엽 신부가 24년 만에 답하다
24개 질문과 답 묶어 『잊혀진 질문』 책으로

이병철 회장, 타계 한 달 전 24개 영적 질문 … 차동엽 신부가 24년 만에 답하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오른쪽)이 1987년 타계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전한 종교적 질문지가 24년 만에 공개됐다.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 담겨 있다. 이 회장의 비서실에서 10년간 근무했던 손병두 KBS 이사장은 질문지의 글씨에 대해 “당시 비서실 전속 필경사의 필체다”라고 확인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 한 달 전 질문지를 남겼다. 돈에 관한 얘기도, 기업에 관한 얘기도, 경영에 관한 얘기도 아니었다. 2년째 폐암과 투병 중이던 이 회장은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물음을 남겼다. 그걸 천주교 신부에게 전했다. 타계 24년 만에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회장의 질문지는 A4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이 회장의 빛바랜 질문지를 지금껏 간직한 이는 천주교의 원로 정의채(86) 몬시뇰이다. 87년 10월 정 몬시뇰(당시 가톨릭대 교수)은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로부터 이 질문지를 받았다. “조만간 이병철 회장과 만날 예정이다. 답변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들었으나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만남은 연기됐고, 다음 달 19일 이 회장은 타계했다.

 이 회장의 질문은 모두 24개다. 단순한 물음이 아니다. 질문지를 남기기 2년 전, 이 회장은 폐암 진단을 받았다. 암진단을 받은 직후 일본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이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차분히 떠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理想)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적어도 살아서 아등바등하는 흉한 꼴만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이 회장은 폐암을 안고 2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재계의 거물’‘현대사의 거목’은 어땠을까. 투병 중에 이 회장은 삶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죽음을 예견하며 어떤 고뇌를 했을까. 이번에 공개된 질문들은 가볍지 않다. 무겁다. 그리고 깊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 회장이 던졌던 인간적 고뇌, 실존적 시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신(神)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나?” 그렇게 종교의 ‘급소’를 찔렀다. 물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종교가 없어도, 종교가 달라도 착한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그렇게 가슴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물음들이었다.

 
절절하게 흘러가던 물음은 마지막 질문에서 멈췄다.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첫 질문은 ‘시작’, 마지막 질문은 ‘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을 통해 이 회장은 자신의 삶, 그 시작과 끝을 돌아봤을까.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이병철 회장을 10년간 보필했던 손병두(70) KBS 이사장은 “당시 비서실에 필경사가 따로 있었다. 보고서를 올릴 때 또박또박한 필체로 다시 써서 올렸다. 이 질문지는 비서실 필경사의 필체”라고 확인했다. 정 몬시뇰은 “이건 영혼에서 나오는 물음이다. 물질에서 나오는 물음이 아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심령의 호소가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회장의 질문지에 담긴 메시지를 요즘 젊은이들도 숙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24년 만에 깨어난 이 회장의 질문에 정 몬시뇰의 제자인 차동엽(53) 신부가 답을 했다. 연말에는 답변을 묶어 『잊혀진 질문』이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故 이병철 회장과 차동엽 신부의 질의응답(2)




고 이병철 회장과 차동엽 신부의 질의응답(2)






 

이회장의 물음은 ‘창조’에서 ‘진화’로 이어졌다. 신의 창조와 인간의 진화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그건 신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가장 현대적인 접점이기도 하다.

차 신부는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라는 대담을 중앙일보(2009년 2월 5일자 21면, 9일자 25면)에서 한 적이 있다.

차 신부는 물리학계의 거두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신이 인간을 빚었나?”라는 물음에 소상하게 답한 바 있다. 당시 대담 내용을 끄집어내며 차 신부는 답을 이어갔다.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건 단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지구의 환경, 우주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딴판이다. 81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유신론자라고 나왔다.

그 81년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대립적 관계가 아닌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생명이 피어난다/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계속)


 

(출처 ;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Text and Photo from Internet :
Webpage by Dalmasan, May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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