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6월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St. Aloysius Gonzaga
Saint Aloysius Gonzaga (Jesuit)
San Luigi Gonzaga Religioso
Born:9 March 1568 at castle of Castiglione delle Stivieri in Montau, Lombardy, Italy
Died:20-21 June 1591 at Rome of plague, fever, and desire to see God;
relics entombed under the altar of Saint Ignatius Church, Rome
Beatified:19 October 1605 Pope Paul V (cultus confirmed)
1621 by Pope Gregory XV
Canonized:1726 by Pope Benedict XIII
Luigi = derivato da Clodoveo
The Patron Saint of Youth
주님은 어디에서든지 성인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
심지어는 잔인하고 타락한 문예 부흥기의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플로렌스는 "사기,살인,독살,음탕이 난무하는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로이시오 곤자가에게는 "신심의 어머니"가 되었다.
왕족의 아들인 그는 왕궁과 군사 훈련장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로이시오가 영웅적인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알로이시오는 일곱 살에 심오한 영적 자극을 체험했다.
그는 마리아의 성무일도, 시편 기도 외에도 신심 기도를 바쳤다.
그는 아홉 살에 고향인 카스틸리오네를 떠나 플로렌스에 와서 공부하게 되었으며
열한 살에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재를 지키는 등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부모와 오스트리아의 여왕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했으며,
필립 2세의 궁전에서 시동(侍童)으로 지냈다.
알로이시오는 궁중 생활을 보면 볼수록 그것을 외면하고 되었고 성인들의 생활을 공부함으로써 위안을 얻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체험에 관한 책을 읽고 난 그는 예수회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그의 결심은 스페인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고는 4년에 걸친 아버지와의 투쟁이 있었다.
고위 성직자들과 평신도들도 그를 "평범한 소명"에 머물러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으나 결국 그는 소원대로 가문을 계승할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허락받았고 예수회의 수련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다른 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종류의 고행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고행의 정확한 본질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더 많이 먹어야 했고 다른 학생들과 오락을 즐기라는 강요를 받았으며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기도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는 철학 공부로 4년을 보냈으며 로베르토 벨라미노 성인을 그의 영적 지도자로 삼았다.
1591년에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었다.
예수회는 자체 병원을 개설했고 총장과 다른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직접 봉사에 나섰다.
알로이시오도 환자들을 씻기고 그들의 침대를 만들면서 간호했다.
그러다가 그만 그 자신이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회복된 뒤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침대에서 쉽게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약해졌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며칠 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그는
기도 생활의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는 23세에 세상을 떠났다.
재를 지키고 자신을 채찍질하고 고독 속에서 기도하며
여자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성인으로 알려진 알로이시오는,
절제 생활이 축구 선수나 권투 선수들의 훈련장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따라서 성적 금기가 거의 무너져버린 듯한 요즘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수호자가 되기에 부적당한 것 같다.
체중이 초과되고 냉온방 시설이 잘된 사회가 스스로 어떤 결핍을 감수할 수 있을까?
알로이시오가 그랬듯이 그럴 만한 이유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정화시키려는 이유는
기도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I am a piece of twisted iron; I entered religion to get twisted straight.
-Saint Aloysius
(Picture from Fr. Maurice Meschler's "Life of St. Aloysius Gonzaga")
스페인의 필립 2세를 섬기고 있는 마르끼스 페란떼 까스티글리오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롬바르디의 가족 城에서 3월 9일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인이 될 처지에 있었으나, 아주 어릴적부터 수도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1577년에 그는 공부하러 플로렌스로 가서, 만투아 공작의 궁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알로이시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경험한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선교사가 되려는 열망으로 불탔다. 마침내 그가 16세 되던 해 예수회에 입회하기로 결정하였다.
부친의 격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듯 했으나 드디어 그는 1585년, 로마의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모범적인 수련자였으며, 흑사병이 퍼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듯 하였다
예수회가 환자들을 돌보기 위하여 병원을 열자,
알로이시오는 너무나 열심히 일한 나머지 자신도 만성 열병에 걸려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는 성 로베르또 벨라르미네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성인이 후일 그의 성덕을 증언하였다.
성 알로이시오의 자서전과 편지 및 영적인 저술들은 아주 독특하고
다른 시대와 사회 사람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이다.
알로이시오 공자가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교황 베네딕또 13세에 의하여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비오 11세에 의해서는 가톨릭 청소년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부산교구홈에서)
♬Take and Receive-Manoling Francisco. S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