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이름''

2009. 5. 22. 오후 2: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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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허수경(시인)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동물, 곤충, 식물, 조류들이 있다는 게
아닌게 아니라 너무나 경이롭다. 누가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그들에게 주었을까.

김춘수 선생님의 시 ‘꽃’은 우리에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해주지 않았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름들을 불러준 이는 아마도 자신이 불러준 이름처럼 되지는 않았을까.

금낭화는 독일어로 하면 ‘눈물을 흘리는 심장’이다.
화관이 볼록한 주머니처럼 생겨 금낭화라고 우리들은 부르지만 독일인들에게는
그 화관이 심장처럼 보였나 보다.

그 분홍색의 심장이 툭 열리면서 피어나는 하얀 꽃 금낭화, 혹은 눈물을 흘리는 심장.
그 이름을 불러보면 어떤 때는 황금주머니가 내 앞에 있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어떤 심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는 듯하다.

천양희 선생님이 시에 기록한 이 이름들을 햇빛이 낙낙한 오후에 지고 있는
그리고 피어나는 들판의 꽃들을 보면서 불러본다.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이름들을 기록한 이 시가 저절로 획득한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시인은 아마도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는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용히 이쁜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제가 노랑무늬영원, 물결무늬고둥,
아침깜짝물결무늬... 가 되었다가
한마리 수풀떠들썩팔랑나비로
숲속을 어지럽히고 팔랑 거리며 날라갑니다.
햇빛이 찰랑대는 봄날의
풍경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우리의 한글이 얼마나 구엽고
사랑스럽고 묘사력이 풍부한지요?
.

사라진 것들의 목록


-천양희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수선소집 목포댁 재봉틀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졌다

고전 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세상에는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가

나도 나를 버리는데 반생이 걸렸다

걸려 있는 연(緣)줄 무슨 연보처럼 얽혀 있다

저 줄이…… 내 업을 끌고 왔을 것이다

만남은 짧고 자국은 깊다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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