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님 까페,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 23호, 1998 봄)
保健福祉部가 1997년 8월에 立法 豫告한
「臟器 등 移植에 관한 法律案」 제 16조에 나타난
뇌사자의 장기 적출에 대한
遺族 同意(추정 동의: Presumed Consent)의 倫理神學的 硏究
I. 들어가는 말
장기 이식이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한에서의 하나의 선(善)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만1) 장기 이식 분야에서 드러나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장기 이식 수술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그 수술을 위해 제공되는 장기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장이나 혈액을 파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사람의 신체를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다는 풍토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 이식 수술은 장기의 매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기증으로써 가능하다. 장기 이식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원칙이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게될 문제는 장기 기증을 위한 동의의 문제로서 특별히 장기를 제공하는 당사자의 명시된 동의보다는 명시되지 않은 동의, 곧 예를 들어 불의의 교통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된 사람이 평소에 자신의 장기 적출에 대해 명시적인 동의서라든가 언급이 없었을 경우, 이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와 관련된 유족들의 추정 동의(推定 同意)2)의 문제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명시적으로 장기 적출에 대한 동의서를 남겨둔 경우는 거의 없는 상황이며,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장기 기증 신청서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3)
뇌사자의 장기 적출을 위한 법적 장치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데, 곧 첫째는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 적출에 대한 명시적 반대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요한 장기를 언제나 적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과, 둘째로는 장기 기증 동의서 등의 작성과도 같은 각 개인의 사망 전 장기 증여 약속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상정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은 위의 가능성 중 첫 번째 가능성을 입법 예고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개인의 자유와 관대함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반면 첫 번째 해결책은 비록 명시적인 동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유족들의 추정 동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장기 적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고상한 윤리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4)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1997년 8월에 입법 예고한 ꡔ臟器 등 移植에 관한 法律案ꡕ 第 16 條는 “사망한 자가 생전에 장기 기증에 동의하였고, 유족(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 자매)이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을 경우”와 “사망한 자가 생전에 본인의 장기 기증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고 유족이 사망한 자의 장기적출에 동의한 경우”라고 언급함으로써 뇌사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생전에 장기 기증에 대한 반대만 하지 않았다면 유족들만의 동의로 장기 적출이 가능하다는 첫 번째 가능성을 그 해결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다. 곧 뇌사자 자신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기 때문에 뇌사자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족이 뇌사자를 대신해서 장기적출에 대한 추정 동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추정 동의(Presumed Consent)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한다는 보고가 있다고 한다. 곧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뇌사 상태에서의 장기 공여의 문제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여 이식할 때와 마찬가지로 장기 기증 카드와 같은 장기 공여자의 명백한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5)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는 시민들의 장기 기증을 고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와 함께 실제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윤리 지침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인 시스템이 장치되어 있다.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권리와 환자의 자기 결정 권리, 장기 공여자가 되는 방법 등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 사항들을 소책자나 인터넷, 방송 등 각종 매체를 통하여 널리 홍보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도 상당히 높다고 한다.6)
시민들의 참여가 다른 나라들처럼 그리 높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뇌사자의 장기 공여의 대부분은 사실상 추정 동의라는 형식의 유족들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경우 과연 장기 기증자 개인의 신체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존중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장기 공여와 관련한 추정 동의에 대한 윤리신학적 해석을 내리려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그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장기 적출과 관련해서 장기 기증 동의서를 썼다거나 혹은 장기 기증과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이 논제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추정 동의의 문제는 물론 보건복지부가 1997년 8월에 입법 예고한 「臟器 등 移植에 관한 法律案」이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전제한다.7)
II. 장기 기증을 위한 동의
장기 이식에 있어서 윤리성의 기준은 인간성의 발전과 존중이며, 이 기준은 장기 이식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도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8) 곧 이는 단순히 고치고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육체적 및 정신적 조건들을 참되고도 고유한 의미에서 더 나은 상태로 만든다는 의무까지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이식을 위한 의학적 개입은 반드시 인격으로서의 고유함이 간과되어서는 안되며, 한 사람의 인간을 또 다른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인간의 고유한 인격으로서의 품위와 정체성, 절대적 평등까지도 근본적으로 간과하는 사고 방식으로 인한 장기 이식은 언제나 중대한 불법이 되고 말 것이다.9)
여기서 장기 기증에 따르는 동의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다. 곧 인간의 인간다움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자유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장기 이식과 수혜라는 차원에서 동의라는 핵심적인 윤리 문제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의란 엄격히 말해서 장기 매매의 거부를 의미하며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공여자 측에서의 자유로운 기증이며,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공여자의 자유가 전제되어 있는 행위이다. 즉 장기 기증자 자신이 충분히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자유로운 동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장기 이식 수술의 성공을 위한 일차적 조건은 면역 거부 반응을 피할 수 있는 의학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형제나 부모로부터, 혹은 자녀로부터 장기 제공을 받아야 한다면 가족의 압력이라든가 주위의 눈초리는 자유로운 동의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10) 또한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유로운 동의를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고 뇌사 상태로 빠지게 되었을 때 윤리성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장기 공여라고 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동의는 그 본성상 자유를 요구하며, 또한 자유를 증거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유는 본질적으로 책임감을 요구하며, 구조적으로 인간적 가치를 고양시킨다. 자유는 인간의 자아 실현을 위해 인간에게 맡겨진 하나의 윤리적 능력이며, 이는 가치에 의해서, 가치를 존중함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기증은 인간 육체의 올바른 이해는 물론 인간의 인격성 및 책임감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 육체를 올바로 이해할 때 장기라든가 신체 기능은 인간에게 있어서 탁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인간 육체를 정신적 및 영성적 범주를 무시하고 단순히 장기나 조직의 복합물이나 덩어리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현대의 인간학은 인간 육체를 특수한 방법으로 인간 실현에 도달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은 창조주의 사랑의 표지이며 열매로서 살아 움직이는 선물이 된다는 것에 있으며, 또한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줌을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 육체는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선물로서 스스로를 탁월하게 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시간, 온갖 정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선물’로서의 정체성을 살아가며, 구체적으로는 장기나 신체 조직의 기능이라는 방법을 통해서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추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의 육체를 내어주는 것으로 표현되며, 죽은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이 자유롭고도 책임감있는 결정을 통한 기증을 촉구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 나아가서 인간 육체의 본질적이고도 기본적인 의미로서의 ‘선물-기증’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일 것이다. 삶이란 때로는 가치 실현을 위한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11)
III. 추정 동의의 윤리적 정당성의 근거 이론들
장기 공여에 있어서 공여자 자신이 장기 기증에 대한 직접적인 동의를 할 수 없는 경우에 추정 동의의 문제가 생겨난다. 실제로 뇌사자의 발생으로 인한 사체 이식의 경우 대부분이 추정 동의에 의해서 장기 공여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장기 이식을 실시하는 병원에서 장기 기증 신청서를 구비하여 장기 기증 신청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에 장기 기증 여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그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일반적인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뇌사자에 의한 장기 공여도 공여자 자신의 직접적인 동의보다는 주로 가족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1997년 8월 입법 예고한 ꡔ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ꡕ에서도 뇌사자의 경우 본인이 생전에 반대만 하지 않았다면 가족들만의 동의로 장기 적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서 추정 동의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생전에 어떤 명시적인 장기 기증 동의서라든가 유언장 등을 남기지 않은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인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추정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다음의 몇 가지 윤리적 원칙에 입각하여 살펴 볼 수 있겠다.
1. 반성(反省)의 원리
반성의 원리란 지혜의 규범으로서 윤리적 원칙 등에 대한 의심이 있을 때 선택해야 할 행동이 어느 쪽인지를 가리켜 주는 원리로서, 이 원리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규칙은 ‘의심스러울 때는 추정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곧 추정은 의심이 생길 경우에 일반적으로 더 옳은 행동이 어디에 있고 두려워해야 할 불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다. 추정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반대편의 진리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자기의 권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12) 예를 들어 권리 문제에 갈등이 생길 때에는 공동선이 개인의 선익 보다는 우선하며,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권에 시비가 있을 경우 현재의 소유자에게 우선권이 있으며, 의심스러운 법은 구속력을 상실한다는 측면이 이 반성의 원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규칙들이다.13)
이 원리를 교통사고로 인한 뇌사자의 장기 적출 문제와 관련하여 적용할 때, 이 뇌사자가 생전에 자신의 사후 장기 기증에 대한 어떠한 명시적인 동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이 사람에게서 장기 적출을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가능한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이 사람이 비록 서면으로는 아니더라도 생전에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나는 절대로 내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 놓지 않겠다” 혹은 “나는 죽은 후에라도 온전한 신체로 묻히기를 원한다” 라는 식의 분명한 의사 표명을 하였다면 이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 표명도 없는 상태라면 우리는 이 반성의 원리를 통해서 장기 적출 여부에 대한 윤리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우선적으로 그 사람이 이러한 상황일 경우 어떠한 결정을 내렸을 것인가?에 접근해야 한다. 현재의 이 상황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결정이며, 만일 당사자라 하더라도 이웃의 선(善)을 위해서, 또한 윤리적 상위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장기 적출을 동의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추정이 아마도 틀렸을 것이라는 반대의 입장이 증명되지 않는 한 장기 적출은 윤리적으로 가능하다는 추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생전에 선하게 살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나 봉사에 적극적이었으며, 더욱이 종교를 가진 신앙인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자신의 장기 적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동의를 했으리라는 추정을 할 수 있을 뿐더러, 생전의 그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로서의 장기 적출을 반대했을 것이라는 적극적인 증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의심스러울 때에는 추정되는 쪽을 선택하라’는 반성의 원리를 적용하여 추정 동의에 따른 장기 적출에 대한 윤리적인 정당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개연론 (蓋然論, Probabilsm)
개연론에 대한 논쟁은 16세기에 대두되기 시작하여 17-18세기에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론으로써 법과 인간의 자유가 대치될 때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 것과 관계된다.14)
개연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의심이 있는 경우에 어떻게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반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연론도 마찬가지로 반성의 원리의 일종이다. 이는 법의 의무에 관해서 석연치 않은 의심이 남아있는 경우에 행위자가 자기 최선의 지식과 소신에 의거하여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자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확실히 죄가 되거나 확실히 안전한 분야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개연론의 주장에 의하면 자유의 편에 우선권을 줄 건전한 이유가 있고, 법을 우대해야 한다는 통념적 확실성도 없을 때에는 자유로이 행동해도 좋다고 하고 있다. 곧 구속력을 갖는 법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자기 자유를 활용하여 진정 자유롭고 책임감있는 선(善)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런 책임감이 있는 한 개연론의 원리를 따르는 것은 무방할 것이다. 이 원리는 인간의 자유를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법의 참된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요컨대 법은 인간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필요한 정도로만 그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15)
개연론과는 그 의미가 다른 몇 가지 윤리체계 중에는 엄격주의(Rigorism)와 이완주의(Laxism)가 있는데 전자의 이론은 법에 상치되는 이론적 근거가 상당히 확실할 때에도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고, 후자의 이론은 엄격주의와는 반대로 약간의 개연성만 있어도 자유 행동이 허용될 뿐 아니라 그 행동은 또한 법 의무의 준수로부터 면제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서 이 두 이론은 모두 가톨릭 교회로부터 단죄 받았다.16)
그러나 개연론의 입장은 법을 따르는 의견이 더 개연적이라 하더라도 윤리 질서는 법만을 따르도록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인간에게 양자택일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다면 하느님의 뜻에 더 맞는 길을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을 더 개연적으로 선택하여 거기에 고착되어 버리면 다른 개연적인 의견들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곧 인간은 “의심스러운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원칙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다면 여러 가능성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연론의 정신이며, 건전하고 타당한 주장이다.17)
이러한 개연론의 이론을 장기 적출의 문제에 적용시켜 보자. 이미 앞서서 언급했듯이 1997년 8월 보건복지부에 의해 입법 예고된 법률안에 의하면 “장기 기증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본인의 서면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뇌사자 등 사망한 사람의 장기 적출은 “본인이 생전에 동의하고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경우”와 “본인이 생전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유족의 동의를 얻은 경우”로 한정한다고 밝힘으로써 뇌사자의 경우 본인이 생전에 반대만 하지 않았다면 가족들만의 동의로 장기 적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뇌사자 등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장기 기증에 대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공여자 본인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장기 적출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나타나게 되며, 이 문제를 우리는 개연론의 이론을 적용하여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개연론은 뇌사자 본인이 생전에 장기 적출에 대한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를 하며, 이 상황에서 뇌사자 본인이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적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따르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법을 더 개연적으로 선택하여 거기에 고착되어 버리면 다른 개연적인 의견들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뇌사자 등 사망자의 유족들에게 양자택일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다면 어떤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더 적합한가를 숙고하여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18) 곧 개연론은 ‘의심스러운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선택하라’(in dubio libertas)는 원칙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사자 자신이 생전에 자신의 장기 적출에 대한 명시적 동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적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엄격주의 이론의 입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선택 규칙
선택 규칙이란 양심의 판단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윤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내적 기준을 제공해 주는 규칙이다. 이 선택 규칙은 윤리학에 의하여 연구된 여러 가지 구체적인 규범들을 포함하는데19) 가장 기초적인 규칙은 더 중요한 가치들은 덜 중요한 가치들보다 먼저 선택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에 대한 가치 질서와 서열의 등급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오토 쉴링(Otto Schilling)과 같은 윤리 신학자는 이 가치 질서를 영원한 구원, 생명, 건강, 자유, 명예, 물질적 선(善)의 순서로 놓고 있는데,20) 이 순서는 경우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 가치의 체계와 서열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궁극 목적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선택 규칙은 위에서 언급한 더 중요한 가치의 선택이라는 일반적 규칙 외에 다음과 같은 구체적 선택 규칙들이 있다.21)
① 한 인간의 개별적 선은 그 인격 전체의 총체적 선을 따라야 하며, 또한 한 개인의 선은 그가 속하는 단체나 공동체 전체의 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장기 이식의 대원칙은 일차적으로 장기를 제공하는 장기 공여자와 이를 받아들이는 수혜자 모두에게 인간 자유의 진전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 아래 선(善)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뇌사자의 장기 적출에 대한 유족들의 추정 동의는 뇌사자 자신의 선과 그(녀)가 속한 가정이나 공동체 전체의 선을 거스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모든 자유의 사용에 있어서는 개인적 및 사회적 책임의 도덕적 원리가 준수되어야 한다. 즉, 자기 권리 행사에 있어서는 개인이나 사회적 단체에 있어서나 타인의 권리와 타인에 대한 자기의 의무와 모든 이의 공동 이익을 고려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22)
② 어떤 일을 실천하는 것이 어떤 개인에게만 필요하거나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일은 그 사람에게만 의무를 지우며, 어떤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은 그 일에 대한 우선적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자녀들의 가정 교육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그 자녀들의 부모이며, 따라서 그 부모에게는 자녀들의 가정 교육을 위한 우선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뇌사자의 장기를 만일 어떤 말기 환자에게 이식 수술을 행함으로써 결정적으로 그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뇌사자가 비록 생전에 장기 적출에 대해 명시적 반대나 동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유족들에게 장기 적출에 대한 일종의 의무를 지운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성공의 개연성이 더 큰 행위나 조건을 덜 큰 행위나 조건보다 먼저 선택해야 한다. 그 행위는 물론 도덕성에 위배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④ 당장에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 위태로운 가치는 나중에라도 구할 수 있는 위태로운 가치보다 먼저 선택해야 한다.
⑤ 같은 사정에서라면, 개인적인 필요성보다는 확실한 필요성을 먼저 채워야 한다.
⑥ 기존 가치에 대한 비(非) 침해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기존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는 새로운 생명을 전달하는 권리보다 월등히 높다. 가끔 상급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상급 가치를 살리기 위하여 하급 가치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이 선택 규칙은 엄격히 말해서 추정 동의를 보조해주는 성격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자유로운 양심에 따르는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내적 기준의 역할을 함으로써 자유로운 양심에 의한 동의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곧 이러한 내적 기준이 자유로운 양심에 의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게 되고, 나아가 뇌사자의 장기 적출에 대한 추정 동의의 수용도 그리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여섯 번째 규칙을 따를 때, 만일 뇌사자가 자기 자신의 장기로서 다른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장기를 적출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사자 자신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매우 고귀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IV. 마치는 글
우리는 지금까지 장기 이식에 있어서 장기를 공여하는 뇌사자 등 사망자가 생전에 자신의 장기 적출에 대한 명시적인 동의를 하지 못하고 사망했을 경우 야기되는 추정 동의를 지탱해주는 윤리적 근거를 찾으려고 시도해 보았다. 실상 이 추정 동의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죽은 사람의 존중이라는 측면이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되며, 또한 인간 생명을 살리는 측면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체(死體)는 물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사체의 부검이나 해부, 또한 의학적인 이유 등에 의해서 사체가 씌여지는 것이 정당하다면 인간 생명의 구제를 위한 사체의 이용은 위에 열거한 이유들보다도 더 기본적인 상위의 선(善)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죽음 후에 자신의 신체에서 어떤 장기를 떼어내어 다른 사람에게 기증함으로써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혹시 자기 자신이 직접 그러한 기증 결정을 못하고 죽었을 때 의사들에게 장기 적출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분명히 윤리적 상위 가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곧 장기 공여자가 장기의 공여로 인해 중대한 해를 당하지 않는다면 이웃의 선(善)은 장기 기증의 정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23)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침으로써 장기 적출에 대한 유족들의 동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장기 이식은 장기 제공자나 그 보호자의 분명한 동의 없이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장기 이식은 장기 제공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위험이 장기를 받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선익과 조화를 이룰 때에는 도덕률에 부합되며 또한 칭찬받을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 해도, 어떤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지체 절단이나 그의 죽음을 직접 유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24)
추정 동의라는 판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주로 뇌사자 등 사망자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녀)의 선익에 최대한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보통 그(녀)의 부모나 배우자나 혹은 근친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이 가장 적절하게 결정한다고 보는 추정은 절대적인 성격을 지니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의 결정이 그(녀)의 선익에 맞지 않게 결정하는 것 같이 보일 때에는 다른 사람들은 그 결정에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의료진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 결정에서는 물론 본문에서 언급한 추정 동의의 윤리적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장기 적출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곧 심리적 측면으로서 그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결정의 순간에 가족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고를 당한 한 젊은이의 부모에게 의료진이 장기 적출의 정확한 시기를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긴박함을 느끼게 하면서 장기 적출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가족이나 공동체의 시민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유족들을 압박할 수도 있는 동의의 요구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이에 따르는 각 개인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사체(死體)가 공동체에 맡겨진 것으로만 생각함으로써 사체에 대한 존경심이 크게 상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 사체로부터 장기들을 적출해 내는 일에 대한 추정 동의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친지와 사체 사이의 정서적 연결 고리는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ꡔ臟器 등 移植 에 관한 法律案ꡕ에서 뇌사자의 장기 적출과 관련하여 의도하고 있는 ‘뇌사자가 생전에 자신의 장기 적출에 대한 반대를 하지 않았다면 유족의 추정 동의로 뇌사자의 장기 적출이 가능하다’는 측면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윤리적 해석과 의도가 존중되는 한에서 그리 큰 무리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해석에 의한 해결 방법보다도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사실상 장기 이식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교육을 더 크게 확대하는 일과 그럼으로써 시민들이 평소에 장기 기증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일반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사실상 가족의 죽음이라는 매우 비통하고도 충격적인 순간에 유족에게 장기 적출을 청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는 매우 미묘한 어려움을 야기시킬 수도 있을 것이며, 유족들도 역시 장기 적출의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입법 자체가 문제를 해결한다기 보다는 장기 기증 자체에 대한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여 시민들 각자가 장기 기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노력하는 일이다. 병원마다 장기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수 백 명에 이르고 있는 반면 실제로 뇌사자의 장기를 공여받을 수 있는 수술은 한 달에 불과 1-2건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비록 문화적인 요인으로 인한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는 하지만 체계적이고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자유로운 장기 기증 기회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자유로운 동의로써 장기 기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추정 동의의 어려움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