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하던 날 나는 까뮈를 기다린다!

2005. 12. 5. 오후 11: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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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던 날 나는 까뮈를 기다린다.

어젯밤에는 여차여차해서 근 한 달 만에 샤워를 하고(온수가 없으니까), 오늘은
사할린 행 봉고 버스에 아침 일찍 서둘러 몸을 실었다. 대림 2주, 영혼에 쌓인 묵
은 때 벗기러 남 사할린으로 떠나던 오늘의 풍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10년도 더 된 접촉 불량의 카세트(형님이 사주신)는 제 멋대로 모노도 되었다가
스트레오도 되었다가 했지만 그래도 참고 들을 만 했답니다. 뭐 새것 사도 되겠지
만 손 때 묻은 게 아직은 제게 더 익숙합니다. 중고라고 버리고 무슨 MP3라도 사
도 되겠지만, 그렇다면 40년하고 반년을 더 산 제 뭄뚱아리도 신제품과 교체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아직 더 쓸 수 있으니까요.
역시 모차르트 피아노곡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지
윙스턴의 December도 그랬고… 유난히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12월
생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곧 It will be soon Happy Birthday!
오늘은 보기 드물게 햇빛을 볼 수 있던 날이었다. 일 주일 내내 눈이 오고나 진눈
깨비가 퍼 부었으니까…

일년 내 입고 있던 옷
다 벗어 던진
소박한 상념의
자작나무들 다닥다닥
그런 이웃을 둔
기상 청청한 전나무들
설해목 되어 푸르른데

낙하한 낙엽들이
그리울까
저 낙낙한 낙엽송들은

나 아직 살았노라
가녈픈 하소연하는 듯한
시누대들 귀 쫑긋 세우고
눈 밭에서 숨바꼮질 할 때

참새는 어딜 가고
헛기침하는 까마귀들
등 뒤로 찬란한 아침 햇살
바다를 그리워하며
흐르는 시냇가
버드나무들 제 흥에 겨워
버들버들

눈 부시다
12월이여!

그런 상념들에 젖은 채 남 사할린으로 다녀 왔습니다. 노 신부님(그 연로하신 나
이에 넓은 성당 마당 제설기계로 눈을 치우고 계시 더이다.) 만나 뵙고 절하고 그
리고 영혼의 샤워를 했습니다.
해가 여기서는 4시면 지니까, 서둘러 다시 봉고 버스를 탔습니다. 발 밑에서는
두 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납작 가오리 한 토막, 오징어 다섯 마리(이 놈은
젓갈 담궈야지)가 제 고객과 함께 만원 봉고에서 그래도 제 작은 일상의 행복을
더해 주었답니다. 사람 먹고 사는 일이 꼭 아귀 같다는 여자친구 탄식이 문득 기
억이 나 더이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하고 사는지…
아파트로 들어오니 역시 정전! 다행히 중앙난방이 되어 얼어 죽을 형편은 아닌데
, 하루에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씩 절전이 되는 것은 그래도 촛불을 켜 놓고 참을
만한데, 사나흘 내내 저녁과 밤에 절전이 되니 금족 같은 초도 아낄 겸 오늘은 아
예 남포랑 석유를 사가지고 막 심지에 불을 밝히니, 역시나 왠 머피의 법칙 다시
점등… 그래도 등잔 기름도 안 사놓고 새신랑 맞이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 꼴 나
기 실어 도시를 뒤집어 남포를 사놓았으니 이젠 전기 없는 밤도 무섭지 않아요.

촛불 켜던 밤이 이제는 남폿불 밝히는 밤으로 바뀌었으니 촛불아래서 휴대용 가스
레인지에 수제비 한 그릇 끓여먹던 엊그제 보다는 조금 현대화되었다고나 할까요
?
성탄도 기다리지만, 이번에는 어떤 지인이 보내 줄 귀한 시집, 최승호와 김용택
그리고 알베르트 까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까뮈! 피 끓던 젊은 시절, 손에
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는데…
우리 서로 못 본지가 30년 다 되어가네요. 이제 내 머리 희끗 희끗한 중년이 되어
그를 맞이하리니!!! 가슴이 다 설레네요. 삶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그 벗을 다시
만나 다시 한번 더 함께 우리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토론해 볼 요량입니다. 포기
, 절망, 순응 그리고 길들여지기라는 인간 조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요량입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대림 2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림 2주 맞이
하셨나요?

대림 2주 월요일 밤에 보냅니다.
지금 이곳은 엄청 눈이 퍼풋고 있습니다.
해상에서의 지진 소식도 들리고…
밤 새 바닷물이 불어나지는 않을지...

 

 

 

-  Fr. lawrence.Joung  러시아에서 -

댓글 7

  • 2005년 12월 5일 오후 11:28

    마리송님, 세상에 태어나서 정 라우렌시오 신부님 같은 삶을 살아보고도 싶다는 생각... 사치스러운 것일까요? 신부님께 용기를 빌어 드립니다.

  • 2005년 12월 6일 오전 8:37

    형제님은 이미 마음의 가난을 살고 계시잖아요!........행복하여라 ~

  • 2005년 12월 6일 오후 12:00

    정말 아름다둔 글입니다~!!이글을 읽으면서 "케노시스"비움만이 소박하고 간난한 삶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맛 볼 수 있는 것 같군요~~!!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 2005년 12월 6일 오후 3:20

    난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밖에 나가기 싫고 이불 뒤집어쓰고 그냥 자고 싶던데, 참... 대단하십니다..

  • 2005년 12월 7일 오후 10:56

    저는 마리송이 오랫만에 목욕을 하셨다고요...ㅎㅎㅎ 로렌스 신부님들은 모두 이렇게 해외에서 고생을 하시고 계시군요. 미얀마에도 로렌스 신부님이 먹을 물도 없이 고생을 하고 있으시답니다.

  • 2005년 12월 7일 오후 11:33

    아이참.. 아오스딩 선배님은 제가 판공성사로 오랜만에 목욕한걸 어찌 아셨나요?...ㅋㅋㅋ...앞에 앉으셔서 2학기동안 웃겨주셔서 즐거웠습니다..매주 보내주시는 영어미사 메일도 감사합니다!

  • 2005년 12월 20일 오전 10:49

    마리아씨 반갑당...근황이 궁금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