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제자 마을 조성을 위한 구 요비 신부님 편지

2006. 12. 18. 오후 5:35:06

글자

친애하는 벗이여

 

하느님 아버지의 특별한 섭리로 우리가 구로1동 성당에서 인연을 맺고 살아 온지도 어언 20여 성상(星霜)이 흘러갑니다.

제가 30대 중반의 한창 젊은 나이로 첫 본당 신부가 되어, 여러분 모두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목에 헌신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대 후반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사제(?)의 길에 들어섰나 봅니다.

 

사제가 사목하던 본당을 떠나면,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우정과 친교도 서서히 소원 해져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우리의 만남은 이에 반하여 오히려 조금씩 조금 씩 더 친숙해져 오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특히 우리가 참 제자 모임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삶의 지표를 찾고자 하면서부터 인가 봅니다.

어쩌면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본당 사목을 접고 주교님의 명으로 사제 양성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의 정신적인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미 1998 IMF시절에 제가 불란서로 안식년을 떠날 때부터 여러분이 베풀어 주신 후의에서 비롯되었나 봅니다.

종종 구 신부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인다 는 이야기를 듣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오히려 제가 인복이 많아서, 사제 생활에 정진하는데 여러분으로부터 영적인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저는 고민이 참 많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근 한달 가까이 감기 몸살을 앓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고 허약해진 사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어떤 중압감이 저를 짓 누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프라도 사제회의 한국 책임자로 임명을 받으면서부터 기쁨이나 성취감 대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 5년간 여러분의 후원 속에서 제 나름대로 혼신을 다해 신학생 들의 영적 지도를 임했다면, 앞으로 제 앞길에 첩첩이 쌓여있는 과제들을 바라보며 일을 시작하기 전에 버거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매일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9.23)

제가 프라도 회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프라도회는 아마도 제 십자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근심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기도와 지도편달을 간청합니다.

 

많은 근심과 걱정 중에 제일 마음에 걸리는 일이 참 제자 마을 조성 입니다. 사목 생활을 해 오면서, 많은 분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교회의 공동 선을 위하여 일 하고자 저의 도움을 청해 왔는데,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땅(토지)이었습니다.

뜻밖에도 올 7월에 좋은 환경의 후보지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대두되어,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 이신 명신 토마스 형제와 몇 분이 함께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접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참 제자 모임의 올바른 정체성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영성의 주제가 있다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와 하느님의 가난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는 각자 독립적인 위격(Persona)이신 세 분의 하느님이 한 몸을 이루신다는 심오한 신비를 말하는데 이 사랑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자기 비움(Kenosis)안에서 가능합니다.

즉 성부는 모든 것을 다 지니고 계신 전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이를 당신만이 누리지 않으시고, 아들 성자에게 온전히 다 내어 주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오는 자기 비움이 있으시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받으신 모든 것을 당신이 독점하지 않고 아버지께 되돌려 드림은, 또한 아들이 아버지께 지니신 사랑에서 나오는 자기 비움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이렇게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 사이에서 서로 자기를 내어 주심은 서로간의 사랑에서 나오며, 이 사랑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또한 성령은 하느님의 자기 비움입니다.

 

이 하느님이 누리시는 삼위일체의 삶은 서로 다른 세분(삼위)이 하나(일체)를 이루는 친교(Koinonia)를 말하는 것인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은 이 친교(Koinonia)의 정신과 이를 구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는 가난의 정신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참 제자 마을의 조성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런 두 가지 정신, 친교(Koinonia) 와 가난의 정신을 살고자 하는 봉사(Diakonia) 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공동체적인 영성의 삶이 필요합니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시편133.1)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사도행전2.44-47)

 

이런 면에서 우리가 나의 집, 나의 가족처럼 언제든지 머무르며 쉬고,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쉼터나 피정의 집이 가능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가난이 지향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배우며 이에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랑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치매병원이나, 치매환자 요양과 같은 시설도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기관과의 협력아래 자리잡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한 세계 교회 안에서도 젊고 활기찬 한국 교회가 자칫 소홀하기 쉬운 기도와 관상생활에만 전념하는 수도원을 모시는 것도 하느님 백성의 선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상이 그 동안 제가 번민하며 기도 중에 자주 찾아온 내용의 일부입니다.

참 제자 마을 의 조성은 우리만의 능력이나 계획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섭리하심과 돌보심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많은 기도와 공동체적인 식별은 늘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청합니다.

아울러 이 임야 구입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려운 경제 생활 중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기부의 정신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무엇 보다도 제가 한국 프라도 사제회의 책임자로서 아무런 염려나 근심 없이 이 일에만 전념하여, 한국 교회 안에서 참으로 복음을 따라 사는 참다운 제자 들인 사제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이 일을 협조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 우리의 이 계획을 전해들은 참 제자 모임 회원의 친척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 좋은 일에 써 주십시요 하며 현금 1 억원을 봉헌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좋은 지향과 계획에 하느님의 축복이 이 자매님을 통해서 전해짐을 믿으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자세한 일들은 양 명신 토마스 형제님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혼연 일체가 되어 이 일을 시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이 계획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던 날 우리가 함께 묵상하며 나눈 성서 말씀이 떠 오릅니다.

주님의 천사가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거리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 저쪽에는 열 두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묵시록22.1-2)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의 기쁨과 새해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

 

2006.12.16.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구 요비 신부 드림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사랑방/자유게시판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