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피정의 집 기공 기념미사 강론

2011. 11. 6. 오전 8:41:59

글자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구요비 (욥) 신부

  유난히 비 피해가 많은 금년 한해의 농사를 추수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한 늦가을, 온 산야는 붉고 노오란 단풍으로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10월 마지막 주일에 윌 참 제자 마을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피정의 집을 짓기 위한 기공의 첫 삽을 뜨려 합니다. 우리가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임야를 살 무렵(2007년)을 떠올려 봅니다. 서울 외곽의 어디 버려진 땅만이라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백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북향(北向)의 임야를 아주 싸게 매입하였습니다. 국내 제일의 조경가이신 정영선 선생님이 여러 번 우리의 보금자리를 둘러보시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뒷산이 성모 마리아의 치마폭처럼 포근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땅은 오른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오른 손가락”이라는 성령 송가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이곳을 거닐 적마다 위로와 희망을 갖게 됩니다.

  작년에 불란서의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1천년 이상 된 유서 깊은 분도 수도원에서 피정하면서, 앞에는 대서양이 펼쳐지는 수도원의 장엄한 풍광에 매료되어 틈나는 대로 농장과 바닷가를 산책하곤 하였습니다. 우리의 이 터전은 이런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유럽 수도원에 비길 수 없지만 앞에는 홍천강이 흐르고 기암절벽의 앞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이런 좋은 입지조건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몇 년째 화두(話頭)처럼 읊조리는 시편 말씀 126편을 요즈음도 더욱 절실히 음미하곤 합니다. :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주시면, 그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금년 들어 본격적으로 건축 설계 도면과 씨름하며 자주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다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1코린 3,10)

  하지만 요즘에는 점점 더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어떤 알 수 없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힘이나 지혜에 의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닌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하심을 신뢰함에서 오는 희열과 평온이 아닐까 감히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모곡리 우리의 보금자리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알 수 없는 힘, 이끌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피정의 집을 지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르심과 요구에 미력하나마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하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피정의 집은 우선적으로 회원들이 언제든지 와서 쉬고 기도하고 피정하며,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피로와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은혜로운 안식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신자들, 일반 사람들에게도 활짝 열려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고 모임하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각자의 삶과 일터로 돌아가는 친교(koinonia)와 소통의 장소(community center)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나를 따르라!”(마르 1,17; 요한 21,19)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철두철미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참다운 제자”의 길을 배우는 복음의 학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201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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