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가치관의 문제점과 참된 가치관의 이해 -진교훈 원장님

2008. 12. 25. 오후 12:41:09

글자
 

현대사회 가치관의 문제점과 참된 가치관의 이해


진교훈(서울대 명예교수)


1. 현대사회의 가치관, 즉 실용주의의 문제점


   현대사회의 가치관에서,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되는 가치관은 실용주의이다. 이 실용주의는 이른바 상업주의(배금주의)와 공리주의의 부산물이다. 상업주의는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공리주의는 유용성(有用性)과 효용성(效用性)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이론이다.

  실용주의는 절대적이고 고정된 영원불변한 진리를 부정하고 언제나 인간의 그 때 그 때의 생활과 관계되는 경험적이고 상대적인 가치만을 표방한다. 그러므로 실용주의는 지식이나 진리를 구체적인 생활과 관계해서 생각한다는 점에서 고려할 여지가 있으나, 그 이론 자체로는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실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실제적 효과라든가 환경에의 적응의 성공이라는 개념은 주로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을 뿐이며, 논리학적으로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것이 더욱 좋은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주장은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거짓말이나 기만을 하여 당장 효과를 보았다고 하드라도, 우리는 거짓말이나 기만을 진리하고 할 수는 없다.

  둘째로, 실용주의는 실제적 효과를 실재로 경험에 의해 검증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같은 사실도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또 경험이 다르면 그 결과도 달라질 수 있음으로, 종내에는 진리의 일정한 기준을 부인하게 되는 상대주의에 빠지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의 기준이 없다면, 어떠한 가설도 옳다든가 그르다는 것을 검증할 수 없게 된다.

  셋째로, 실용주의는 모든 지식은 생활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따라서 진리를 위한 진리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도 분명히 그들에게서는 현실 생활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유용하기 때문에 진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리이기 때문에 유효하며, 유용하다는 반론도 성립할 수 있다. 진리는 본래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는 것이므로 실제적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성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로, 실용주의는 진리관을 인식론 분야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에도 적용하며, 도덕이란 우리에게 전하여 내려오는 편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진리와 도덕을 개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규정된 유용성과 결과로 환원시키는 것은 실용주의적 세계관의 결정적인 구성요소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의 이기주의 또는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검토한 바대로 실용주의는 진리가 아닐뿐더러 참된 가치관을 대변할 수 도 없다. 그러면 참된 가치는 어떤 것일 수 있는가?


2. 가치개념의 애매성과 다의성과 참된 가치의 이해


1) 가치와 평가의 구별


가치라는 개념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의 될 수 없는 말이다. 가치는 고유한 정의를 할 수 없는 말, 예컨대, 실존이라든가 사랑처럼 최고의 개념에 속하기 때문에 분석하거나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오로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인식하는 것, 의욕(意慾)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처럼, 가치판단도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우리는 항상 가치판단을 하며 평가를 내린다.

우리는 다양한 사물들을 평가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 예컨대 물, 밥, 옷, 책, 건강, 행동 등등은 우리 인간에 의해서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 만일 내가 물이나 밥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다시 말해서 물이나 밥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물은 나의 목마름을 풀어주고 밥은 나의 배고픔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치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이른바 쾌락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똑같은 물건도 사람에 따라, 또 같은 사람에게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가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무가치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며, 욕구충족이 사람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쾌락주의자들의 가치관은 필연적으로 상대주의에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치상대주의(상대주의 적 가치론)를 주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가치 상대주의는 그 자체로 자기모순을 범한다.

가치상대주의자들은 평가 및 가치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이며 보편타당한 가치 및 가치판단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상대주의는 근본적으로 가치회의론이다. 왜냐하면 가치상대주의는 가치판단에 대해서 일체의 올바른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회의론자들은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치회의론자들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이론을 내세울 때 그들 나름대로 일정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일 누군가가 그들의 가치판단을 반박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판단이 정당하고 반대자의 판단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들도 가치평가를 실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들 회의론의 명제에 모순당착하게 되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가치 자체와 평가를 구별해야 한다. 가치에 대한 우리의 통찰이나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평가는 가치 자체와는 다른 것이며, 언제나 가변적일 수 있고 상대적일 수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효용(效用)에 근거를 두고 평가를 내리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상황이 바뀌고 당면하고 있는 사물이나 행위가 이제 더 소용이 없게 되면, 그에 따라 평가도 바뀌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가치의 본질, 즉 가치자체와 평가를 혼돈 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물건이 좋다’는 판단은 그 물건의 평가와 상관된다. 실용적인 면에서 물건을 고찰하는 것은 조건적인 평가와 상관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인데, 이것은 단순한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따라서 평가와 가치는 구별된다. 평가는 가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일 수 있지만, 가치 자체와는 다른 것이며 가변적일 수 있고 상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치 자체, 가치의 본질은 불변하며 영원하다. 다시 말해서 가치는 체(體)로서 불변하며 평가는 용(用)으로서 가변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치 직관론자들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가치는 직각(直覺), 또는 직관될 수 있다. 가치는 자명(自明)한 것, 즉 명증적(明證的)이며, 본래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가치는 사람들의 호오(好惡)나 유용성과 관계없이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명제의 실질적 가치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실재적 존재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명제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초시간적, 초공간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그것은 이념적 존재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학의 공식처럼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명제를 지킬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에 하나의 명령으로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이 명령을 거역할 때, 우리는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 명령을 거역할 때, 우리는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그러므로 그 명제는 정언적(定言的, kategorisch)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정언적이라 함은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이유를 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지키고 행해야 하는 지상명령을 의미한다 .예컨대, 인간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아무런 목적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무조건 따르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정상한 인간이면 누구나 이러한 명제를 통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가치와 평가를 왜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2) 참된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는 근본적으로 세가지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 경치의 아름다움, 성스러운 곳에서의 거룩함을 체험한다. 우리는 양심의 가책과 같은 윤리적 가치체험, 음악이나 회화 등을 통한 미적 가치체험, 경건한 종교의식을 통한 종교적인 가치체험을 한다. 우리가 선(善), 미(美), 성(聖)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체험을 근거로 하는 관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가치관념을 가치라고 부른다.

이 가치관념에는 질(質) 또는 수준과 서열이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우리는 ‘더 좋다’든가, ‘더 아름답다’든가,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든가, ‘최고가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최고가치가 바로 참된 가치이다. 참된 가치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신정법과 자연법에 나타나 있는 것이며, 절대적인 가치이며, 불변하는 진리이다. 참된 가치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느님께서 명하신 10계명에서, 이를 복음정신에 따라 한 마디로 압축해 보면 바로 경천애린(敬天愛隣)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참된 가치는 우리 가톨릭신자가 믿고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잘 나나나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고 규정하고 인간존엄보장을 국가의 가장 큰 의무로 규정한 것은 근본적으로 자연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2007년에 우리나라에서 제정되고 공표된 효도법도 10계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가치상대주의나 인위적인 평가로부터 벗어나서,  절대적인 가치, 즉 참된 가치, 즉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부록; 평화신문 칼럼 기사

생명위기의 근원은 상업주의의 발호이다.

   진교훈(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오늘날 돈 귀신(mammon)은 스포츠계와 예술계와 의료계, 심지어 종교단체와 학교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생명공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업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생명은 얼마든지 파괴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가 생명공학계와 의료계에 팽배해 있다. 병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과잉검사와 과잉진료, 제약회사와 대형병원의 불법적인 리베이트관행 등은 병원수가를 높이고 병든 가난한자를 착취하고 수탈한다.

  최근에 먹을거리를 위협하고 있는 멜라민 파동 등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 상업주의와 배금주의로부터 연원한다.

  생명공학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생명공학은 생명현상을 이용하여 산업 및 의료분야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모든 기술적 고안(innovation)과 그 응용을 의미한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생명공학은 상품과 재화를 생산하기 위하여 생물학적 요소에 의하여 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 과학적 공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것.”(1982년 OECD 보고서에서)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생명공학은 이미 그 자체로 상업화(commercialization)와 결탁되어 있음에 우리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생명공학은 거대(巨大)과학이며, 이 거대과학은 막대한 비용과 막대한 물리적 자원과 인력이 동원되어야하므로 연구의 주도권을 정부와 막강한 거대자본가가 쥐고 있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정치경제적 영향과 지배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고, 특히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기 쉬우며, 이데올로기화됨으로써 선악의 판단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예컨대 우생학은 인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신박약, 조울증 등 유전병이 의심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들을 강제로 또는 임의로 단종(斷種)시켜 후손을 남기지 못하게 하는 사이비 정치-과학 프로그램이었다. 이밖에 생물 및 화학무기와 핵무기생산, 세균전, 생체실험, 약품의 부당한 고가화(高價化) 등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지금도 “과학기술 자체는 문제가 없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가 될 뿐”이라고 말하면서 과학기술의 중립성에 대한 신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학은 당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람이 만든 과학 속에는 그 과학을 만든 사람의 편견과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학은 영원한 진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불편부당하거나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만능주의(scientism)로부터도 벗어나 생명공학의 설명전략의 문제점과 생명공학과 상업주의 결탁을 감시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생명공학은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인 설명전략을 가지고 있다.

  첫째, 물질적 환원주의이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는 생명조차도 물질로 환원시킴으로써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말살시킨다.

  둘째, 기계적 결정론이다: 기계적 결정론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되고 인간은 사물화(事物化) 된다. 유전자결정론도 기계적 결정론에서 파생된 것이며, 유용성이 적어 보이거나 고비용이 드는 사람을 조기에 살해할 구실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인간은 기계화되고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 된다

  셋째,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선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모든 가치를 이용성에 둠으로써 생명가치조차 효용성에 근거하여 평가하며, 생명과 인간을 개별화하고 원자화하고 상품화하며, 가치상대주의에 빠짐으로써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없고, 여론이나 선동에 의한 다수결의 횡포와 이기주의에 빠져,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넷째, 도구적 합리주의이다:  생명공학자와 생명산업자는 비정한 논리적 사고에 의한 도구적 합리주의에 근거하여 생명공학의 상업화와 생명조작 등을 정당화하고 합리화를 획책한다. 따라서 인간은 소외되며 비인간화된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설명전략은 근원적으로 생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공학기술의 상업주의의 발호(跋扈)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1

  • 2009년 1월 8일 오전 2:45

    도움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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