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삶(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감곡성당 주임신부님 9월 16일 강론)

2007. 9. 21. 오전 11:41:43

글자
순교자 성월을 맞아 가슴에 와 닿는 신부님 강론 말씀이 있어 퍼왔습니다. 너무 길어서 뒷부분은 생략하였습니다.
참고적으로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감곡성당(성지) 주임신부님이시며, 요즘 평화 방송에서 좋은 강론을
하고 계십니다.
홈페이지 : http://www.thomas-kim.pe.kr/ 에 가시면 강론 동영상이 있습니다.
 

†찬미예수님

우리 교우들이 하느님 앞에 갈 때까지, 일 년 열두 달, 365일......

매일 매일이 순교의 삶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특별히 9월 달만이 아니라, 매일이 순교의 날이요, 또 순교의 달이요,

순교의 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의무요, 살아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우리교회는 이 9월 달을 순교성월로 정해놓고 순교에 대한 깊은 묵상, 또 삶을 뒤돌아보게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순교성월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여러분들, 순교성월을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작년에도 순교성월이 있었듯이 내년에도 순교성월은 또 있을 겁니다.

그래서 순교성월을 지내고 있느냐와 순교성월을 살고 있느냐는 그 차이가 클 겁니다.

순교성월을 산다고 하는 것은, 열매를 맺고/ 체험을 하면서/ 늘 순교의 정신을 기리면서 사는 것이지만......

순교성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해마다 찾아오는 형식적으로 지나가는 순교성월일겁니다.


순교에는 육적인 순교가 있고 영적인 순교가 있습니다.

육적인 순교는 말 그대로 하느님을 위해서 하나뿐인 생명을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 육적인 순교에 이르기까지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영적순교인데, 이 영적순교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는 절대로 육적인 순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육적인 순교까지 가기위하여 첫 번째 단추인 영적순교의 첫 단추는 과연 뭐겠는가?

그거가 극복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육적인 순교로 갈 수 없는 바로 그게 뭘까?

영적인 순교의 첫 단추는 화내는 거 참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자기 분노도 이기지 못하면서 어찌 목숨을 내놓는 그러한 순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화가 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라든지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들이 순교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또 내 그릇을 조금 더 넓혀서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또 저주하고 미워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줄 때/ 이것이 바로 순교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화내는 것을 참는 것은 기초적인 포기입니다.

왜냐하면 화라고 하는 것은 늘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쪽에서 나타나는 방어본능이기 때문에 화내는 것을 참는 것이 자기의 애착으로부터 끊어버리는 첫 번째 단추입니다.

자기를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부활을 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영성 중에서 가장 어렵지만, 하느님에게 직접적으로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포기의 영성입니다.


영적순교의 두 번째는 자기 혀를 다스리는 겁니다.

우리들이 하느님 앞에 늘 부끄러운 것 대부분은 혀 때문에 죄를 짓는 겁니다.

고백소에 들어가서 늘 혀 때문에 지은 죄를 우리들은 대부분 고백합니다.

혀를 다스리는 자가 영혼을 다스린다!

바다에 떠있는 수십만 톤의 큰 배가 아무리 엔진이 좋고, 마력수가 높아 최신 설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꼬리 뒤에 물속에 가라앉아있는 그 키가 있어야만, 방향을 잡고 미국으로도 가고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고.... 지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으로 우리 몸속에 깊숙이 입속에 감추어져있지만 이 혀를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서 천국을 차지할 수도 있고 또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혀를 다스리지 않고 어찌 우리가 순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지껄이고/ 없는 말 꾸며내고/ 보지고 않은 거 본 것처럼 얘기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고 살아갑니까?


세 번째 영적순교는 자기 악습을 이기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악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악습은 자기의 의지 가지고는 이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때마다 전구를 해야 되고 내 힘으로 고치지 못하는 이 악습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분노하는 거로부터 참고/ 혀를 다스릴 줄 알고/ 자기 악습을 이기고/ 그러면 저절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 뭐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미움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미움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자! 사랑하자!’ 하루에 수천 번 외친다고 저절로 미워하는 사람이 이뻐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얘기 드린 대로 영적순교의 훈련을 할 때,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주시는 선물이 바로 미움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까지 주시는 것이 아닌가!


화나는 것을 참고,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내 악습을 포기할 때, 우리는 때때로 상실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영적인 회복이요, 영적인 부활임을 우리들은 늘 명심해야 됩니다.

중략...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