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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와 황선홍. 그라운드에서 쌓은 우정만 해도 20년이 가깝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한국 축구의 대명사라 부른다. 이들이 처음으로 발을 맞춘 것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이다.
어느덧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대 초반이었던 이들의 나이도 불혹에 가까웠다. 하지만 월드컵은 또 다시 이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홍명보 월드컵대표팀 코치와 황선홍 SBS 해설위원(전남 코치)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또 다시 `마음'을 맞춘다. 물론 위치는 바뀌었다. 홍 코치는 벤치에, 황 위원은 중계석에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라운드를 휘젖는 선수 못지 않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독일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홍명보와 황선홍은 이름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홍 코치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필두로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한국이 치른 17경기에 연속 선발 출전했다. 수비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골도 2골이나 터트렸다. 황 위원도 4회 연속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제외하고 거의 매경기에 출전했다. 황 위원 또한 94년과 2002년 두 차례 골을 터트렸다. 이처럼 둘은 걸어다니는 월드컵 역사다.
하지만 이들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 때문일까. 궁합이 환상적이다. 침착하면서도 따뜻한 성품인 황 위원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후배들을 감싸안는 어머니였다. 반면 홍 코치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아버지의 역할을 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홍 코치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 직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병역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건의할 때 황 위원은 뒤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월드컵 직후 포상금 차등 지급이 문제가 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홍 코치가 일률적으로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고, 황 위원은 묵묵히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들은 또 다른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홍 코치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지도자로 아드보카트호에 승선했다. 행정가로 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이 굳은 심지를 돌려놓았다. 홍 코치는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 피하고 싶지는 않다. 선수 시절 쌓아놓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역할도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바뀌었다.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드러났지만 잘 나가는 선수들보다는 선발 멤버에 자주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대표팀 분위기를 최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황 위원은 월드컵의 전령사로 변신했다. 정감가는 마스크와 구수한 목소리, 또박또박한 발음은 황 위원의 트레이드 마크다. 여기에다 후배들의 마음속까지 꿰뚫는 통찰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황 위원도 "명보와 현 대표선수 중 상당수가 2002년에 함께 뛰었던 동료와 후배들이다. 지금도 그들의 눈빛을 보면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축구 정보가 아니라 그라운드를 누빌 때 느꼈던 현장감을 바탕으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해설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쨌든 듬직한 2H(홍명보-황선홍)가 있어 독일월드컵이 기다려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