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점심시간은 저희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일주일에 딱 한번 라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식당에 가면 식탁마다 휴대용 가스렌지와 큰 냄비, 라면과 달걀, 파 등이 미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맛있는 라면을 끓이는 데 일조를 합니다. 어떤 아이는 라면을 봉지에서 꺼내 높이 쌓아놓고, 어떤 아이는 스프를 한데 모읍니다. 또 다른 아이는 불이 약하다며 가스를 바꿔옵니다.
라면이 슬슬 익어가자 저만 그냥 앉아 있는 것이 미안해서, 제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달걀을 ‘탁탁’ 깨트려서 풀어 넣었습니다. 그 순간 한 아이가 제게 "왜 벌써 달걀을 넣어요?" 하고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아이 논리에 따르면 달걀은 마지막 순간에 넣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라면의 참 맛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꽥' 소리를 지르는 녀석 때문에 제 마음이 무척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야,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대충 먹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아이는 "신부님은 뭘 모른다"며 계속 태클을 걸어왔습니다. 불필요한 논쟁이 계속되고 결국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아이의 말 한마디에 제 머리 '뚜껑'이 왕창 열렸고, 그간 유지해온 품위를 완전히 깎아먹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속 좁은 제 자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언짢았지만 그 작은 일을 통해 한 가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정말 사소한 일 하나로도 이토록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사람 마음이구나'하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다툼의 발단은 너무도 사소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서부터 미움이 시작됩니다. 미움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복수심을 낳습니다. 복수심은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또 다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됩니다.
처음에는 말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성이 높아지면서 욕이 튀어나옵니다. 그 욕은 자연스럽게 주먹으로 연결됩니다. 한 대 얻어맞아 코피가 터진 사람은 골프채를 들고 나오는가 하면 골프채에 한 대 얻어맞은 사람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강한 복수심, 용서하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아예 바보처럼 살라고 권고하십니다. 상대방의 무례함 앞에 아예 응대조차 하지 말 것을, 복수심이나 증오심을 원천 봉쇄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마음 한번 돌리면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의외로 천국 체험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음에도 불구하고, 딱 3분만 참을 때 바로 거기서 천국은 시작됩니다.
우리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을 조금만 자제할 때 거기서부터 천국은 시작됩니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마음 한번 돌려 진정하는 것이 천국에 드는 길이며, 구원받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은 우리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기본 원칙 중에 하나가 동태복수법입니다.
상대방이 내게 해준 그대로 나도 똑같이 처신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게 베푼 은혜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답하고, 내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논리는 우리 논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토록 자신을 저주하고 모함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마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던 인내의 예수님이셨습니다.
때로 한번 참는 것, 크게 용서하는 것이 비굴한 처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 발자국 물러서는 일은 결국 덕을 쌓는 길입니다. 자아를 깨치는 길입니다. 자기 해방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결국 예수님 일생의 궁극적 결론은 '사랑'입니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 원수마저 포용하는 큰 사랑, 죽음을 넘어서는 강렬한 사랑, 세월이 갈수록 더욱 깊어가는 강물같은 사랑을 얻기 위해 힘쓰십시오.
결국, 사랑만이 영원하며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이웃 앞에 침묵한다면 사랑으로 침묵하십시오.
이웃 앞에 말을 한다면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이웃 잘못을 고쳐준다면 사랑으로 고쳐 주십시오.
이웃을 용서한다면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