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의 뷰티풀게임] '품바' 이동국의 실패, 부끄러운 일 아니다
개인적으로 거스 히딩크라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까지 끌어올린 '업적'이야 부연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성과지만 정작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살면서 지침으로 삼는 '명언'을 그에게서 얻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대하는 히딩크의 철학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그는 한국을 떠나면서 낸 자서전에 이런 말을 담았다.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다. 골을 만들어내려고 수많은 드리블과 패스를 시도하다 겨우 한두 골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다. 그 숱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따라서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경기다. 정확한 슈팅을 날리고 정확한 패스를 하는 게 중요하지만, 축구 속성상 부정확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 번 실패했다고 그 선수 체면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실패를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작은 충격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이어지는 대목에서도 내 가슴을 때렸다.
"한국 문화에서는 단 한 번의 실패가 그 선수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단 한 번의 실패보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실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두 단락으로 히딩크는 내게 깨달음을 줬다. '그래. 실패를 아쉬워하면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지만 실패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면 실패는 실패가 아닌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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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듯한 이야기로 서두를 연 것은 이동국 때문이다. 타지에서 주춤거리는 그에게 쏟아지는 너무도 매정한 시선을 조금이라도 거둬주고 싶어서다. 실패가 죄는 아니지 않는가.
최근 미들즈브러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동국의 재기용은 힘들 것'이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동국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영국 <가디언>의 사이먼 번튼 기자는 한국의 포털사이트 <엠파스>에 기고한 컬럼에서 "라이언킹의 주인공 심바인 줄 알았더니 (영화속 멧돼지 캐릭터인) 품바였다"는 표현으로 이동국의 실망스러운 활약을 혹평했다. 번튼 기자의 일갈은 영국 내에서 이동국에 대한 평가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회였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의 기회를 잡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동국의 프리미어리그 커리어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패'를 '좌절'의 동의어로 인식하는 스포츠 팬들의 가혹한 매질은 이동국이 바친 1년 반이라는 시간마저 순식간에 '허송세월'로 뒤바꿔놓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짧지 않은 시간을 바쳐 생존 경쟁을 펼쳤다면 그러한 노력을 말 한 마디로 초라하게 격하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 아닐까. 리그 골이 없고, 홈 팬들의 야유를 살 정도로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라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패를 조롱하고 인생의 좌절인양 묘사하는 팬들의 매서운 시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가슴 한 켠이 뻑뻑하다. 이동국이 K-리그 유턴을 원치 않는다는 뉴스가 나왔던 것도 같은 이유로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것이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말리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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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은 실패로 주춤대는 선수에게 너그럽지 못한 분위기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로이스터는 만년 하위팀 롯데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며 '야구판 히딩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일간스포츠>는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을 문제 삼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문화 차이인 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들은 실패할 때마다 크게 실망한다. 미국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실패를 부끄러워하고, 질책당할까 겁내는 문화에서 도전 정신은 낯선 단어가 되고 만다. 실패하는 과정을 노출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환경에서 과감한 시도는 불가능한 임무처럼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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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피겨요정' 김연아이 팬에게 해준 사인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이름 옆에 'No pain, no gain'이라는 문구를 함께 적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실패가 없다면 전진할 수 없다. 큰 물에서 좌절이라는 경험을 얻은 이동국에게 그 아픈 시간이 그저 흉터로만 남지 않도록 조롱보다는 격려의 말을 건네며 토닥거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고 싶다. 작금의 심적 고통이 '얻는 것'이 되려면 그로 인해 파괴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선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이동국 스스로도 실패의 아픈 기억을 감추려 한다든지 변명이나 핑계를 대는 모습보다는 부진을 인정하고 당당히 재기를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전히 당신을 기대하고 성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