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 ‘전문가 보고서’ 의미
미국의 두뇌집단은 행정부의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정보위원장을 지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와 조지 부시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가 주도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통해 두차례 펴낸 ‘미-일 동맹’ 관련 초당파적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미국 안에선 행정부는 물론 전문가 사이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제로 한 초당파적 공동연구 성과물은 없었다. 애틀랜틱카운실의 주도로 민주·공화당 계열을 망라한 한반도 전문가 46명이 14일 공식 발표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안보 프레임워크’라는 선구적인 보고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외교소식통은 13일 “6자 회담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이미 시작됐지만, 미국의 정책이 구체화하지 않은 점에 비춰, 앞으로 미국 안 관련 논의의 준거점 노릇을 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효과적인 비핵화 협정’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미, 남북, 북-일 관계 정상화 및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체결 등 북핵폐기 노력과 촘촘하게 맞물릴 다각적 평화체제 권고안을 내놓았다.
실질적 북-미 관계 정상화 권고=북-미 대사급 외교관계 정상화, 무역관계, 인도적 개발지원 등과 관련한 여러개의 협정을 북한과 맺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북-미 평화협정 하나만을 제안하는 일반적 접근과 다르다. 외교관계 정상화와 관련해선 적성국교역법 적용 완화,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북한을 미국의 원조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제, 미국 안 동결 북한 자산 반환 등과 관련한 미 국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사실상 미국에 ‘징벌관세’(칼럼Ⅱ) 대상인 점을 상기시키며, 미국이 베트남과 관계개선 경험을 토대로 북한의 경제개혁 노력을 고무할 수 있는 협정 체결에 나설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사자들의 평화협정=한국전쟁의 직접 교전 당사자인 남북한·미국·중국 등 4자가 모두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맺어 현행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협정에 대한 미·중의 안전보장과 함께 유엔 안보리가 4자 협정을 공식 추인하는 결의를 채택하는 게 필요하다는 권고 내용이 특기할 만하다. 협정에 ‘한반도의 재통일이 궁극적 목표임을 확언’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 협정 체결 과정에서 1990년 독일 통일을 국제적으로 보장한 ‘2+4 조약’(동·서독+미국·영국·프랑스·소련)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도 조처로서 남북·미국 3자 군사협정 체결=북-미 및 4자 협정 체결에 이르기까지 ‘의도하지 않은 전쟁 가능성을 제거할’ 잠정 조처로 남-북-미 3자 협정을 맺을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의 내용 중 가장 특징적인 대목이다. 군사적 신뢰구축 및 한반도의 안 적정 병력 규모 및 재배치, 협력적 위협감축(CTR) 조처 등을 북쪽과 협의하는 문제가 담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1986년 ‘북한 인민무력부장+남한 국방부 장관+주한 연합군 총사령관 사이의 3자 회담’ 등을 제의한 북한의 문제의식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안보협력기구 창설 등=냉전시대 유럽의 안보질서를 구축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및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2001년 출범한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다자안보협력대화의 선례를 참고해 ‘안전·경제·인권’ 관련 이슈를 다룰 동북아 안보협력기구 창설 관련 6자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이렇게 5대 평화체제(레짐)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남북 및 북-일 관계 정상화 협정 체결도 한반도의 포괄적 평화체제 구축에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남북 협정에선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등 기존 합의 내용을 재확인하며, 통일 과정에서 정치 문제를 다룰 ‘남북 정치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북-일 관계에 대해선 사안의 미묘함 탓인지 협정 체결 필요성을 뺀 구체적 권고안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