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기다리심, 우리의 기다림(1221 대림 제4주일)

2014. 12. 20. 오후 10: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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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1 대림 제4주일


루카 1,26-38 (예수님의 탄생 예고)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하느님의 기다리심, 우리의 기다림>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기쁨, 희망, 설렘 가득 했던 대림시기, 곧 예수님의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시간의 끝자락에 서서,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과 함께 ‘기다림’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 사이의 기다림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히 하느님을 기다리듯, 하느님께서도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실 날을 애타게 기다리듯,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우리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로마 16,25) 하느님께서 우리가 당신의 그 능력을 믿고, 우리가 온전히 당신의 그 능력에 내어 맡기는 순간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하느님의 기다리심’에 대한 응답일 때에 비로소 성탄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 첫 자리를 내어드리고, 우리는 그 다음 자리에 기쁘게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림 마지막 주일을 맞아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하는 오늘 복음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마리아의 응답이 있기까지 마리아 옆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기다리심’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리아를 찾은 가브리엘 천사와 사람의 생각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놀라운 소식에 당황해하는 마리아의 대화를 묵상하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기다리심’을 마음에 그려보면서,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한 신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지난 7년 동안의 시간을 믿음의 벗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대학생 시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교회 청년 활동을 하면서 믿음이 제 생명처럼 다가오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제로서의 삶에 대해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아니었지만, 믿음의 길을 함께 걷는 벗들을 통해서, 제게 맡기신 당신의 소중한 사명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때부터 하느님과의 기나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사제로서의 온 삶을 주님께 봉헌하고 싶었지만, 신자로서 세상 한 가운데에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왠지 현실 도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벗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쁨이었던 제가 과연 세상과 단절된 채 7년이라는 신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들고, 사제로서 흠 없는 삶을 살아갈 자신감도 부족했습니다. 사제가 되고픈 간절함 안에서 사제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를 찾기도 했고, 그 반대로 하느님께서 몸소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심으로써 저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시리라(2사무 7,14 참조) 믿으며 저도 사제가 될 수 있다고 되내기도 했습니다.


7년 동안의 시간, 하느님께서는 저의 확신에 찬 대답을 기다리셨습니다.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제 삶 안에 머무르시면서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주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도 안에서, 벗들과의 대화 안에서, 제게 주어진 여러 가지 사명들 안에서 주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제가 당신의 사제가 될 수 있다면, 비록 그 길이 험난하다하더라도 기쁘고 힘차게 그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서 이루고자 원하시는 것을, 저 역시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님의 사제가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흠투성이지만, 주님께서는 저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매순간 당신을 향한 순결한 응답을 너그러운 인내와 따스한 사랑으로 기다리시면서 말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의 아름다운 대화 안에서 ‘우리의 기다림’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기다리심’을 묵상하는 오늘,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께서 차분한 마음으로 주님과 마주 앉아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벗님들 안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시면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가득한 응답으로 벗님들을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다가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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