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을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0305 사순 제2주간 목요일)

2015. 3. 5. 오전 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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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5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무관심을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귀한 술과 값진 음식도 나누고,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격조 있고 고상한 삶의 대화를 나누며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는 종기투성이의 거렁뱅이 라자로를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동네에 장애인시설이나 장례시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반대하거나, 외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보인다고 빈민촌이나 노점들을 무지막지하게 쓸어 없애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그는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특별히 인색하지도, 무자비하지도 않았던 부자는 죽고 나서 결코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 저편에서 극도의 고통에 신음해야만 했습니다. ?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가난한 라자로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부자는 비록 라자로를 내쫓지는 않았지만, 음식 찌꺼기로라도 배를 채우고픈 라자로의 굶주림을 외면했습니다. 개들까지 와서 핥는 라자로의 상처를 씻고 치유해주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최선은 자신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이라는 어두움이 깊이 드리운 최선이었을 뿐입니다.


이 최선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외로운 사람을 모른 체 했던 부자는 이제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관심을 호소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과 끝까지 무관심으로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는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 사이의 단절은 하느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단절을 깨뜨리시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 외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건너가려 하지 않는 단절의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나의 삶과 너의 삶이라는 구별이 없습니다. 너의 삶이 곧 나의 삶이고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기에, 함께 하지 못할 때 괴로워하고 함께 하는 기쁨을 세상의 어느 것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나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고통스런 단절의 순간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많은 이들은 갈수록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자신의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냉정하리만큼 자신의 길만 걸어갑니다. 그럼으로써 참된 행복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찹니다.


과연 벗님들은 어떠신지요?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어디를 택하고 있는지요? 더불어 사는 기쁨과 홀로 외로이 죽어가는 슬픔 가운데 과연 무엇을 택하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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