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사랑(0228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15. 2. 28. 오후 12: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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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28 사순 제1주간 토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마태오 5,43-48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원수사랑>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사순 시기를 시작한지 열흘이 흘렀습니다. 많은 벗님들께서는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에 함께 하기 위해서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잠시 끊기로 결심하신 벗님들도 계실 것이고, 세상을 살리기 위해 죽어 가신 주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함께하고자 평소에 소홀히 했던 애덕과 선행을 좀 더 열심히 실천하고자 다짐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 후에 열흘의 시간을 보낸 오늘, 그동안의 사순 시기 생활에 대해서 조용히 성찰하면서, 자칫 일상의 유혹과 자신의 나약함으로 흐트러질 수도 있었던 몸과 마음을 추슬러 부활을 향한 십자가의 여정에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순 시기이지만, 부활의 희망을 곱게 간직하고 기꺼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려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다그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 곧 최고의 사랑의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록 머리로는 받아들인다 해도 몸소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원수가 없어.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라고 말입니다. 원수가 누구인지 알아야 그를 사랑할 수 있을 텐데, 벗님들께서 생각하시는 원수란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벗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벗과 원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지 벗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고, 원수는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를 떠나,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벗이지만,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벗과 원수의 차이는 나를 향한 상대방의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벗만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원수를 포기하지 말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며, 내 삶의 의욕을 꺾고 나의 인간 존엄성을 짓밟으며, 나의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사람을 비록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비록 용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비록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하더라도, 그와의 불편한 관계를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의 악의를 나의 선의로 정화시키는 것이고, 그의 악행을 나의 선행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원수라 여겨지는 그 사람 역시 존엄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에 그가 누군가를 해코지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며 회개와 참회로써 새 삶을 살도록 그를 위해 꾸준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그의 손에 죽어갈 지라도 그가 다시 참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벗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적대자들마저 살리신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원수 사랑의 길을 앞서 가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 길로 초대하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원수 같은 사람들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꺼이 품에 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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