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징, 예수님의 표징(0225 사순 제1주간 수요일)

2015. 2. 25. 오전 7: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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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25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11,29-32 (요나의 표징)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요나의 표징, 예수님의 표징>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믿음의 벗님들, 어제 하루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로 봉헌하셨지요. 우리가 하루라는 시간을 주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하루의 삶을 정성된 예물로 주님께 봉헌한다면, 하루하루는 언제나 특별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벗님들께서는 오늘을 어떻게 주님께 봉헌하시겠습니까? 오늘 하루 동안 어떠한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십니까? 오늘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특별한 주님의 표징이나 기적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던가,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때, 쉽게 기적이나 표징, 또는 요행수를 바라곤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 모여든 군중에게서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어진 삶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던 군중은 예수님께 특별한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표징이 자신들의 삶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리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징은 군중이 원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표징, 곧 요나의 표징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나던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먹혔지만,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써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탐욕과 불의, 온갖 죄악에 물든 체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요나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삶의 습성에 젖어 도저히 변화될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요나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징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과 단절된 채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주님의 품으로 다시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표징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표징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가지기보다 나누는 것, 져줌으로써 이기는 것, 죽음으로써 사는 것, 그리하여 완고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실 표징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과시하거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로서의 기적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의 표징은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성경 묵상과 기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 갈 때, 우리 자신이 바로 예수님의 표징이 드러나는 장소이며 표징 자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을 절대화함으로써 이 세상을 점점 살기 어려운 각박한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질 숭배와 소비주의로 말미암은 인간의 도구화, 생태계의 황폐화, 신자유주의의 팽창에 따른 인간 사회의 비인간화,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무자비한 세계화 등등. 이 모든 것은 인간 능력의 절대화에 따른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표징은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표징을 드러내기 위해, 이 표징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섬세함’,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믿음’, 그리고 예수님의 표징을 드러내는 도구로 세상 안에 자신을 던지는 용기입니다.


오늘 하루 믿음의 벗님들께서 자그마한 예수님의 표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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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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