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 불의에, 선으로 악에, 용서로 분노와 폭력에(0302 사순 제2주간 월요일)

2015. 3. 1. 오후 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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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2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루카 6,36-38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정의로 불의에, 선으로 악에, 용서로 분노와 폭력에>


무자비한 철거로 5명의 세입자와 1명의 경찰관이 화마에 희생된 용산, 쌍용자동차의 대량 해고로 말미암아 죽어간 24명의 영혼을 기리던 분향소가 차려졌던 대한문,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건설되는 해군기지로 말미암아 평화를 빼앗긴 강정마을, 송전탑 건설로 삶의 자리를 빼앗길 위험에 처한 순박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통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밀양,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드러내기 시작한 4대강, 세월호 참사의 고통스런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안산, 진도, 광화문 광장, 이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장소들입니다.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 수도자, 사제들이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웃이 되어주어라.’(루카 10,29-37 참조)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전에는 낯설었던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야할 이웃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의한 정치권력과 무자비한 자본권력의 회개를 촉구하고,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걷자고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팎에서는 이처럼 이웃이 되어주는 그리스도인 고유의 애덕 실천에 대해서, ‘역시 천주교는 이 땅의 빛과 누룩이야.’ 라는 긍정적인 시선과 왜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가?’ 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공존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외침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많지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문제에 왜 그리 비판적이고, 왜 권력자들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가?’ 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거셉니다.


세상의 불의와 불공정,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삶의 안락을 도모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매서운 비판에 대해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이들의 편에 선 사람들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들먹이며 비난하고, 신앙 실천에 투철한 그리스도인들을 오히려 거짓 그리스도인이라며 단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제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과연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불의를 저지르고 심판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 죄를 범하고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불의한 사람이 자신을 심판하지 말라고 감히 강요해서는 안 되고,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을 단죄하지 말라고 협박해서도 안 되며, 회개하고 겸손하게 용서를 청해야 할 사람이 마치 권리를 행사하듯 자신을 용서하라고 다그쳐서도 안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인간적인 방식에 사로잡힐 수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억압받으며 상처받은 사람들, 그러기에 불의와 죄악에 맞서기 위해 폭력에 의지하고픈 유혹에, 큰 악을 막기 위한 작은 악을 정당화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성 에프렘 부제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이해하였습니다. “심판하지 마십시오. 불의하게 심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불의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정의에 따라 심판한 사람은 은총에 따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의에 따라 심판 받을 때 은총으로 용서받을 자격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를 위하여 보복하려는 심판자들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이는 자신을 위해 앙갚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불의에 침묵하라는 말씀도, 죄악을 모른 척 하라는 말씀도,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사람들을 무조건 받아주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을 담은 정의로 불의에 맞서고, 자비로운 선으로 악에 대항하며, 살림을 위한 용서로 분노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신 정의와 평화의 길을 함께 걷는 자랑스러운 믿음의 벗님들, 오늘 하루 더욱 정의롭고, 선하며, 평화 가득한 삶을 보듬음으로써 예수님의 간절한 말씀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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