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오늘의 성인♡

2016. 2. 19. 오후 4:53:06

글자

♡2월 1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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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Marcellus)

축일 2월 19일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령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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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스로프(mesop)

축일: 2월19일

아르메니아의 타론에서 태어난 그는 장성한 후
아르메니아의 정부 관리가 되었으나,
마음을 바꾸고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성 네르세스(대)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희랍어, 시리아어
그리고 페르샤어를 공부하는데 전념하여,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성 이사악(대)과 합류하여 아르메니아 선교활동의
선봉장이 되었음은 물론, 아르메니아의
알파벳 구성에 크게 기여하였고, 신약성서와
잠언서를 아르메니아어의 알파벳 구성에 크게
기여하였고, 신약성서와 잠언서를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는 아르메니아와 제오르지아에
학교를 세웠으며, 제오르지아 알파벳을 창조하였고,
죽을 때까지 발라르 샤파트에서 설교하였다.
그는 80세를 넘기고 선종하였는데,
"선생님"이 그의 별명이다. 그의 탁월한 교육과
그 활동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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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바또(barbatus)

축일 : 2월 19일

성 바르바또는 베네벤또 출신으로서
모르꼬나의 성 바실리오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는 특히 이교의 신앙 티파에 주력했는데,
로무알도 공작을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들을
미신에서 크리스챤으로 개종시켰다. 그당시
베네벤또 인근의 도시 국가들은 콘스탄스 2세
황제군으로부터 큰 곤경에 처하여 있었는데,
따라서 바르바또가 미신을 타파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는
주민들이 공경하던 큰 나무를 베어내고,
황금 독사를 녹여버렸다. 이로써 주민들의
미신은 사라졌고, 크리스챤의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는 이 즈음에 베네벤또의 힐데브란을 계승하여
주교로 착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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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레리우스(또는 발레리오(Valerius)

축일 2월 19일 

성 발레리우스(또는 발레리오)는
프랑스 남부 앙티브의 주교로서 그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주력하였고 수도원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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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아토(beatus)

축일 : 2월 19일

엘리판도라고 부르는 똘레도 대주교는
그리스도가 천주 성부의 양자일 뿐이라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을 때,
하느님은 베아또를 보내어 그를 치게 하셨다.
아스투리안산의 수도자인 성 베아또는
그 대주교의 오류 이야기를 전해듣자마자 즉시
글과 설교를 통하여 그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다. 일개 수도사제인 베아또가
스페인의 똘레도 대주교를 상대한 싸움은
당시 사람들의 흥미거리였다. 그러나 승리는
수도사제의 것이었다. 또 베아또 성인은
776년에 묵시록 주해서를 발간했으며,
모자라빅 전례에서 사용한
여러 찬미가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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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벨리나(Belina)

축일 2월 19일 

프랑스 트루아 지방의 소작농의 딸인
성녀 벨리나는 그 지방 영주의 위협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순결을 지키다가
죽었다. 그녀는 1203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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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니파시오(boniface)

축일 : 2월 19일

브루셀에서 출생한 성 보니파시오는
17세 때에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가,
파리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과 성 보니파시오 사이에 야기된 분쟁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결국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듣지 않기로 결정지었다. 이때
그는 파리를 떠나 쾰른을 갔다. 그는 여기서
단지 2년을 지내다가 로산느의 주교로
선출되었던 것이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교구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나, 거의 8년 동안이나 자신이
큰 불신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파리대학교의 사건이 와전되었던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는 마침내 프레데릭
황제군에 의하여 심한 부상까지 입었다.
그는 이 직책을 떠나야겠다고 판단하고
교황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교황은 그를
부루셀의 시토 수녀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시토회원으로 서원하지는 않았지만
수도원 경내에서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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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욱시비오(Auxibius)

축일 2월 19일 

성 아욱시비우스(또는 아욱시비오)는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 4월 25일)에 의해
개종한 후 세례를 받았고, 사도 성 바오로
(Paulus, 6월 29일)에 의해 키프로스 솔리(Soli)의
초대주교로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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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폴로니아(apollonia)

축일 : 2월 19일

필립 황제 치하에서 알렉산드리아 폭도들이
크리스챤들을 거리에서 고문하고 살해하는
참극이 있었다. 그 희생자들 가운데 연로한
여부제였던 아폴로니아가 들어있다. 그녀는
수차에 걸쳐 얼굴을 얻어맞아 이빨을 부러뜨린 후,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녀는 잠시 기도를 그린 후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 타죽었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던 성 디오니시오의
편지 속에 언급되어 있다. 성녀 아폴로니아가
고문을 당할 때 이빨이 뽑히는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휘장은 이빨을 뽑는 핀셋이다.
또한 아폴로니아는 치과의사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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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바레스(alvarez)

축일 : 2월 19일

알베레스의 출생지는 불명하고, 리스본이나
꼬르도바라고 하지만, 꼬르도바알 가능성이 높다.
그는 1368년에 그곳의 도미니꼬회에 입회하여
놀라운 설교가가 되었고, 초기에는 안달루시아에서
그 후로는 이탈리아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 황녀 카타리나의 고해 신부겸 고문이 되어
어린 왕 요한 2세의 초기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와 그의 동료 수도자들이 낮에는 설교 일을 하고,
밤에는 거의 온밤을 지새우면서 기도에 전념하였고,
그들의 식사는 애긍에 의존하였는데,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꼬르도바의 시장에 나가 구걸하였다.
그의 회개 생활은 날이갈수록 엄격해 졌다.
그는 자비의 성모께 봉헌된 성당까지
무릎으로 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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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잠브다(Zambdas)

축일 2월 19일 

성 잠브다(Zambda)는 예루살렘의 37번째 주교로
전해진다. 그는 테반(Tehban) 군단의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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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오르지오(George)

축일 2월 19일 

프랑스 남부 로데즈(Rodez)에서 태어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루에르그(Rouergue)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런데 862년 노르웨이인들에 의해 수도원이
파괴되자 로데즈 교구의 바브르(Vabres)로 이동하였다.
그는 상당히 연만한 나이에 로데브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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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콘라드(Conrad)

축일 : 2월 19일

성 콘라드는 귀족 가문의 사람으로 기혼자였다.
어느날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관목에
불을 지르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쳐서 옥수수밭을 비롯하여
인근 마을까지 불태우는 불상사로 번졌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어느 가련한 사람이
방화한 것으로 거짓 증언을 하여 사형까지
언도되었을 때, 그 사람은 모든 사실을 폭로하여
콘라드는 치명적인 명예 손상과 재산을 잃게 되었다.
이 사실을 심각하게 또 정직하게 반성하게 된 그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임을 인ㅗ歐藪?이르렀다.
그는 수하 사람들을 해방시켰음은 물론, 아내도
글라라회에 입회하도록 주선했고 또 자신은
재속 프란치스칸이 되어 은수자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시실리를 지나 노또 계곡에 당도하여 30여년
동안 살았다. 만년에 그는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고,
피쪼니 그로또를 만들었다. 자기 자신은
숨은 생활에 원했지만, 그의 성덕이 워낙 뛰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으려고
몰려들었던 것이다. 임종하기 얼마 전에 그는
주교를 방문하고 고백성사를 본 후 노또로 돌아와서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벗삼아 다시금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그의 장례식은 성 니꼴라오 성당에서
거행됐고, 그의 무덤은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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