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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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오 10세(Gregory X)
축일 2월 16일
테오발두스 비스콘티(Theobaldus Visconti)는
피아첸차(Piacenza)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파리(Paris)와 리에주(Liege)에서 교회법을
공부한 후 리에주에서 부제가 되었다.
그는 오토보니(Ottoboni) 추기경을 수행하여
영국 선교 길에 오른 적도 있고 성지를
순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아직 사제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6명의 추기경 위원회에 의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어 약간의 물의가 일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Rome)로 와서 1272년 3월 19일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3월 27일에 그레고리우스 10세
(Gregorius X, 또는 그레고리오) 교황으로 착좌하였다.
그는 1274년에 리옹 공의회(Council of Lyon)를
소집하여 동방 교회와 로마간의 화합을 꾀했으나
십자군으로 말미암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공의회가 끝난 후 그는 스위스의 로잔(Lausanne),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 피렌체(Firenze),
아레초(Arezzo)까지 여행했으나 1276년 1월 10일
아레초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71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교황 베네딕투스 14세
(Benedictus XIV)에 의해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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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야(Elias)
성 다니엘(Daniel),
성 이사야(Isaias),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사무엘(Samuel)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성 셀레우코(Seleucus)
축일 2월 16일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들,
곧 성 다니엘(Daniel), 성 이사야(Isaias),
성 예레미야(Jeremias) 그리고 성 사무엘은 모두
이집트인들로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했다는 죄목으로
실리시아(Cilicia)의 탄광에서 강제 노동을
선고받았다. 때는 막시무스 황제의 박해시대였다.
팔레스티나(Palestina) 지방 카이사레아의 성문에
당도한 그들은 집정관 피르밀리아누스 앞으로
끌려가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었다.
그들은 모두 고문을 받고 참수되었다.
성 팜필루스(Pamphilus, 6월 1일)의 하인이던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그들의 유해를
요청하여 장례를 지냈는데, 그도 이 때문에
고문을 받고 화형을 당하였다.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그의 죽음을 목격하였는데,
그는 무서운 죽음의 순간에도 항구한 신앙을 증거하며
웃는 얼굴로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 셀레우쿠스는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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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르디아나(berdiana)
축일 : 2월 16일
비리디아나(viridiana) 혹은 베리디아나(veridiana)
등으로 불리우는 성녀 베르디아나는 투스카니의
까스뗄피오렌띠노 태생의 귀족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안이 몰락하여 12세 때에
친척집의 하녀로 지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성덕이 크게 돋보였음으로 그녀는
꼼보스뗄라 순례를 한 뒤에는 아예 은수자로서
살았던 것이다. 주민들은 엘사 강변에 작은 기도소가
딸린 움막을 지어 주었는데, 그녀는 이 조그마한
움막에서 34년을 기도와 고행 속에서 살았다.
그녀가 외계와 통하는 길은 그 움막에 딸린
조그마한 창문이었다. 그녀는 주로 빵과 물 그리고
가끔씩 채소를 먹었다. 잠은 맨땅에서 잤다. 한번은
뱀 두마리가 그녀의 움막으로 들어왔으나, 그녀가
내쫓지 않자 1년 동안 함께 살다가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녀는 1221년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방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이때 재속
프란치스칸이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발롬브로사 회원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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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스토치움(eustochium)
축일 : 2월 16일
지르젠띠의 성 마태오가 메씨나에서 설교할 때,
칼라파토의 젊은 백작부인 마칠다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 되었다.
얼마동안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드린 응답인지 딸 아이
하나를 점지받았는데, 어떤 행인이 백작부인을
만나서 그 아이는 구유에서 낳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으므로, 그렇게 하여 아이를 낳고보니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지라,
이름을 스마락다로 지었다. 어릴 때부터 열심이던
이 아이는 아버지가 적임자를 골라 결혼 서명까지
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동정서원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혼 상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부친이 그 후
사망하자, 스마락다는 바시코 수도원에서
글라라회 수도복을 받고 이름을 에우스또치움이라
하였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가난 정신이
뛰어났고,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과
통회 정신은 극히 열렬하여 전 수녀회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바시코에서 11년을 살고난 뒤,
그녀는 더욱 엄격한 규칙을 원하였는데,
교황 갈리스또 2세께서 성 프란치스꼬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 설립을 인가하셨다.
이리하여 그녀는 몬떼 베르지네에 수도원을 세우고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에우스토치움은 35세에 선종하였고,
1782년부터 공경받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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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네시모(Onesimus)
축일 2월 16일
필레몬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편지 1장 10-18절에 의하면 성 오네시무스
(또는 오네시모)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의 콜로새(Colossae)에서
살던 성 필레몬(Philemon, 11월 22일)의 노예였다.
그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에
바오로를 만나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바오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다. 또한 바오로는 그를
성 필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성 오네시무스를
이제 노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도록
요청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성 필레몬에게 말한
그대로 자신도 행동했고,
또 “성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인정하였다
(골로 4,7-9). 성 히에로니무스
(Hieronymus, 9월 30일)에 의하면 그 후
성 오네시무스는 말씀의 설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페수스의 주교까지 되었으며,
로마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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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나(Juliana)
축일 2월 16일
성녀 율리아나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쿠마에(Cumae)에서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처음에는 그녀의 부친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았고, 그 다음에는 그녀와 결혼을
간절히 바라던 집정관 에빌라시우스(Evilasius)로부터
또 다른 고문을 받았다. 그 후 감옥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으로 고문을 받다가 순교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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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노(Julian)
축일 2월 16일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이집트에서 순교한 5천여 명 순교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와 그의 동료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어떤 기록에는 다섯 명의 군인이란 표현이
라틴어의 비슷한 단어 때문에 5천 명으로
잘못 사용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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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질베르토(Gilbert)
축일 : 2월 16일
잉글랜드 셈프링햄 태생인 그는
부유한 노르만 기사인 죠셀린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로 유학갔다가 영국으로 귀향한 뒤에,
부친을 계승하여 셈프링햄과 티링톤의 상속자가
되었으나, 그 후 그는 린컨의 로버트 블로엣 주교
관할의 성직자가 되었으나, 1131년에 부친이
사망한 관계로 작위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부터 그는 일곱 명의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봉쇄생활을 하는 그룹의 지도자로
활약하였고, 이 단체를 수도회로 육성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얼마 뒤에 그는
씨토에 가서 씨토회원들이 여자 수도회를 맡아
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받았다.
그리고 남자 수도회는 자신이 지도하여
교황 에우제니오 3세로부터 승인받았다.
질베르토회로 알려진 이 공동체는 영국에서만
26개의 수도원으로 성장하였으나, 헨리 8세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1165년, 그는 켄터버리의 토마스를 지원한
죄목으로 토옥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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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우스티노(Faustinus)
축일 2월 16일
성 파우스티누스(또는 파우스티노)는 360년경
성 우르시키누스(Ursicinus, 12월 1일)를 계승해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브레시아의 순교자 성 파우스티누스(2월 15일)와
성 요비타(Jovita, 2월 15일)와는 방계 친척 사이로
그들의 행적을 편집하였다. 교회미술에서
성 파우스티누스는 화살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주교로 표현된다. 그는 전염병에 걸렸을 때
간구를 청하는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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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필립바 마레리아(Phillippa Mareria)
축일 2월 16일
필리파 마레리아(또는 필립바)는 이탈리아 남동부
아브루치(Abuzzi)의 치콜리(Cicoli) 태생으로
그녀의 집안은 아브루치의 주요 지주가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신심이 깊은 부부였기 때문에
인근 지방에 설교하러 온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10월 4일)를
자기 집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필리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완전히 본받으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그녀의 결혼을 서두르자 필리파는 삭발을
한 후 보기 흉한 옷을 입고는 몸을 숨겨버렸다.
이윽고 그녀는 집을 나와서 마레리아 인근의
한 산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에서 거룩한
한 작은 형제회 회원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유명한 토디(Todi)의
루지에로(Ruggiero, 1월 28일) 수사였다.
그녀는 리에티(Rieti)에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규칙을 채택한 첫 번째 프란치스코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원장이 되어 많은 동료들을 지도하였다.
철저한 가난생활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1236년 그녀는 중병에 걸린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리에티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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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호네스토(Honestus)
축일 2월 16일
프랑스의 님 태생인 성 호네스투스(또는 호네스토)는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누스
(Saturninus, 11월 29일)의 제자로서 에스파냐로
파견되었다. 그는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살해되었다.
♡2월 16일 오늘의 성인♡
2016. 2. 15. 오후 5: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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