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오늘의 성인♡
===============
성 노스트리아노(Nostrianus)
축일 2월 1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인
성 노스트리아누스(또는 노스트리아노)는
용맹하게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에 맞서 싸웠다.
================================
성 니콜라오 팔레아(Nicholas Palea)
축일 2월 14일
니콜라우스 팔레아(Nicolaus Palea, 또는 니콜라오)는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우연히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성인의 강론이 너무나
감명 깊게 들렸기 때문에 설교자회의 입회를 간청하였다.
귀족 출신이며 또 풀리아(Puglia)의 지오비나조
(Giovinazzo)에 영지까지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유산으로 페루자(Perugia)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지었고, 트라니(Trani)에도 또 다른 수도원을 세웠다.
한때 그는 로마(Rome) 관구의 관구장까지 역임하였다.
제라르 드 프라셋은 그를 일컬어
'거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8년에 승인되었다.
================================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암모니우스(Ammonius)
축일 2월 14일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와
성 암모니우스(Ammonius)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여겨진다.
================================
성 마로(Maro)
축일 2월 14일
오론테스(Orontes) 강 부근 시리아의 한 산에서
고적한 생활을 하던 성 마로는 주로 야외생활을 하였다.
그는 꼭 필요할 경우에만 염소 가죽을 덮은 움막에서
지냈는데, 그 움막을 사용한 사실은 거의 없었다.
한 번은 그가 버려진 신전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개조하여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기도의 집으로
가끔씩 이용했다. 그를 지극히 존경하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그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그는 선 채로 기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지팡이로
자신의 몸을 받치고 기도했다.
그는 청하는 사람에게 극히 짧은 말로 권고하였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영육을 치유하는
능력을 허락하셨으며, 놀라운 영적 지혜로서
사람들을 권면케 하였다.
레바논 사람들도 성 마로를 큰 성인으로 공경한다.
================================
성 메토디오(Methodius)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
축일 2월 14일
성 키릴루스(Cyrillus)와 그의 형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라는 이름으로세례를 받고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왕립 학교에 보내져서 성 포티우스(Photius)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 그 대학에서 스승 성 포티우스를 능가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성 메토디우스는 옵시키온(Opsikion)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을 맡는 총독이
되었다가 사직한 후로는 은수자가 되었다.
이들 형제는 보스포루스(Bosporus)의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황제 미카엘 3세가 러시아의
드니에프르(Dnieper) 강과 볼가(Volga) 강변에 사는
카자르족(Khazars)을 회개시키도록 파견하자 그들은
카자르 언어를 배워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성 키릴루스는 이후 몇 달 동안 교황청립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성 메토디우스는 소아시아
헬레스폰트(Hellespont)의 폴리크로니온(Polychronio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863년에는 모라비아(Moravia) 왕국의 왕
로스티슬라프(Rostislav)의 요청에 따라
성 포티우스 주교는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를 모라비아인들의 개종을 위해
파견하였다. 비록 그들을 개종시키는 일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두 형제의 슬라브어
실력은 대단하였다. 성 키릴루스는 선교를 위해
성서를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다.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 키릴루스는 성 메토디우스의 도움으로
복음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전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독일 성직자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동안 라틴어만
사용하던 교회의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한 것과
또 그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왔으므로 혹시
서방교회의 이단의 일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사우(Passau)의
독일 주교가 사제 후보자 선발을 거부한 것이
그들의 선교활동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이 사건으로 두 형제는 교황 니콜라우스 1세
(Nicolaus I)로부터 소환되었는데 그들이
로마(Rome)로 가던 중에 교황이 서거하였다.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는
두 형제의 방문에 매우 호의적이었고, 두 형제는
크림(Krym) 반도에서 서거한 교황 성 클레멘스
(Clemens)의 유해를 인도하여 교황의 따듯한 영접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그들의 정통성을
확신하게 되었고 또 전례에서 슬라브어 사용을
인가하였다.
그들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성 키릴루스는
수도자가 되었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모라비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869년 2월 14일 수도원에서 운명하여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한편 성 메토디우스는 교황 특사로서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돌아갔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모라비아와 판노니아
(Pannonia)를 독일 교계제도에서 독립시켜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성 메토디우스를 판노니아와 모라비아
지방 전체를 관할하는 시르미움(Sirmium)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870년 독일의 왕 루드비히 2세와 독일 주교들은
라티스본(Ratisbon, 오늘날의 레겐스부르크)
시노드에서 성 메토디우스를 쫓아내기로 결정하고
그를 가두었다. 그는 3년간 스바비아(Swabia)에서
귀양생활을 하다가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의
중재로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한 8세 교황은 슬라브 지역에 대한 사도좌의
관할권을 지키기 위해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적인 개정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계속 적대적인 시선으로
성 메토디우스의 활동을 지켜보던 독일 교회는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성 메토디우스를 이단자로 고발하였고,
880년 그는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교황에게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뛰어난 변론을 한 끝에
결국 교황은 교서 “인두스트리애 투애”
(Industriae tuae)를 통해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하였다.
882년 교황의 뜻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성 메토디우스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동생의 뒤를 이어 성서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독일 교회와 성 메토디우스 간의 투쟁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결국 그 모든 투쟁은 그가 건강 악화로 인해
885년 4월 6일 파스카 목요일에 자신의 주교좌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그는 참으로
힘든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성 메토디우스와 성 키릴루스는
‘슬라브 민족의 선교사’로 불리며, 동유럽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행한 전례는 오늘날의 러시아
전례가 되어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온다. 그들의 축일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은 1880년 교황 레오 13세
(Leo XIII)의 회칙에 의해 이루어졌고,
198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회칙 “슬라브인의 사도들”(Slavorum Apostoli)을 통해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함께 이들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
성 키리온(Cyrion),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성 아가토(Agatho)
성 모세(Moyses)
축일 2월 14일
성 키리온(Cyrion),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성 아가토(Agatho)와 성 모세(Moyses)는 모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 순교자들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성 키리온은 사제였고,
성 바시아누스는 독서자, 성 아가토는 구마자
그리고 성 모세는 평신도였다.
================================
성 바수스(또는 바소(Bassus)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성 프로톨리쿠스(Protolicus)
축일 2월 14일
성 바수스(또는 바소)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그리고 성 프로톨리쿠스(Protolicus)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일부 고대 기록에는 이들과 함께
순교한 9명의 동료를 추가하고 있다.
================================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또는 발렌티노)사제,의사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또는 발렌티노)주교,순교자
축일 2월 14일
로마 순교록에는 발렌티누스라는 두 명의 성인을
2월 14일에 기념하고 있다. 한 사람은
로마(Rome)의 사제이며 의사인 성 발렌티누스
(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로서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때인 269년에 순교하여
플라미니아 거리(Via Flaminia)에 묻혔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테르니(Terni)의 주교인 성 발렌티누스로
로마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유해는 후에 테르니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두 명의 순교자가 실제로 현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두 명의 발렌티누스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테르니의 발렌티누스가
로마로 이송되어 처형되었는데, 그로 인해 로마와
테르니에 두 개의 전통이 생겨난 것이지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본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 동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발렌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어떤 관리의 감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 관리에게는
앞 못 보는 양녀가 하나 있었다.
성 발렌티누스가 이 양녀의 눈을 뜨게 해주자
이에 감동된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한 전 가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널리 퍼져 마침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성 발렌티누스는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14세기부터이다.
연인들이 이날 서로 주고받는 특별한 형태의
축하 카드도 성행하였다. 이날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시기가 새들이 짝짓기하는 기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 것으로도 생각된다.
즉 이 전통에 따르면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젊은 여인들이 ‘발렌틴’(Valentin), 이른바
자신들을 흠모하여 시중을 드는 기사를 선택하고
이 기사들은 젊은 여인들에게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념하는 발렌타인 축일의 여러 가지 의미와 형태는
상인들이 상업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
성 비탈리스(Vitalis)
성녀 펠리쿨라(Felicula)
성 제노(Zeno)
축일 2월 14일
성 비탈리스와 성녀 펠리쿨라(Felicula) 그리고
성 제노(Zeno)는 로마 순교록에서 로마(Rome)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 비탈리스와 성녀 펠리쿨라가 성 제노와
약간의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성 제노는 말머스베리(Malmesbury)의
윌리엄(William)의 언급에 의하면
아피아 거리(Via Appia)에 세워진 옛 성당의
수호성인이었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은 성 제노가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의 형제라고 하나
이것은 오류로 여겨진다.
================================
성 아브라함(Abraham)
축일 2월 14일
시리아(Syria) 태생인 성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이교도들만 사는 레바논의 리바누스(Libanus) 산의
어느 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처음에 과일 장사를 하다가 주민들의 심성을
살핀 후부터 복음을 전하였으나 냉대만 받았다.
그래도 그는 더욱 인내하고 온화한 자세를 갖추었지만,
그들의 손에 한 번 죽을 번한 경험을 늘 기억하면서
또 다른 방법을 궁리하였다.
마침내 그는 돈을 구하여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시켜 개종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3년 동안 선교하여
상당한 개종자를 얻게 되자 어느 사제에게 그들을
맡기고 자신은 사막으로 돌아갔다.
그 얼마 후에 그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하란의 주교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그의 덕을 흠모하여
그가 임종하였을 때 성인의 옷 한 점을 얻어서
그의 축일이 되면 그 옷을 직접 입고 예배했다고 한다.
================================
성 아욱센시오(Auxentius)
축일 2월 14일
페르시아 사람 아다스(Addas)의 아들인
성 아욱센티우스(또는 아욱센시오)는
시리아에서 태어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시종무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무관직을
그만 두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근교
옥시아(Oxia) 산의 한적한 곳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그는 후일 마르키온 황제 앞에서
에우티케스(Eutyches)의 그리스도 단성설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칼케돈(Chalcedon) 근교의
스코파(Skopa) 산에서 은수 생활을 계속하여
그의 성덕이 온 나라에 퍼졌다. 그의 주위에는
수녀 공동체를 세우려는 수많은 여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
성 프로쿨루스(Proculus)
성 에페부스(Ephebus)
성 아폴로니오(Apollonius)
축일 2월 14일
성 프로쿨루스(Proculus)와 성 에페부스(Ephebus)
그리고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에 대한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행전에 의하면
그의 시신의 보호자였다. 그들은 모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 Acta Sanctorum을
편집 간행하는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는
성 프로쿨루스를 이탈리아 테르니(Terni)의 주교인
성 프로쿨루스(4월 14일)와 동일인물로 보고 있다.
================================
성 아돌프(adolf)
축일 : 2월 14일
아돌프는 텍클렌부르크 백작 가문 출신으로,
어린 나이 때 쾰른시의 위원이 되었으나,
하느님을 보다 완전하게 공경하기 위하여
깜프의 씨토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1216년,
오스나브룩크의 주교가 되었다.
================================
성 안젤로(Angelus)
축일 2월 14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변경인
구알도에서 태어난 안젤루스(또는 안젤로)는
극도의 단순성과 순진무구함 그리고 예모에 있어서
돋보였다. 청년 시절에 어느 걸인으로부터
빵을 빼앗은 일이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최고의
과오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늘 그 행동에 대해
후회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차례 성지를 순례하였다.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맨발로 여행하여 신심을 단련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카말돌리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 후 얼마 뒤에 그는 자신의 소망인 독수 생활을 할
허가를 받아 거의 40년 동안이나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였다. 그는 1325년 1월 25일에 운명했는데,
인근 지역에 이상한 종소리가 울려 퍼져서 주민들이
그의 암자로 찾아가 보니 운명해 있었다고 전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5년에 승인되었다.
================================
성 안토니노(Antoninus)
축일 2월 14일
성 안토니누스(또는 안토니노)는 이탈리아 남부
안코나(Ancona)의 피체눔 태생으로 젊어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수도원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베네벤토(Benevento)의 시코 공작의
파괴 공작에 따라 이 수도원을 떠나 소렌토로 가서
그곳의 주교인 성 카텔루스(Catellus, 1월 19일)와
함께 지냈다. 그들은 곧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함께 성 미카엘(Michael)의 환시를 보았다.
그 후 소렌토 주민들이 그에게 함께 지내기를 요청해서
그는 독수생활을 포기하고 성 아그리피누스
(Agrippinus) 수도원에 정착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가 운명할 때 자신의 육신을 소렌토 시내나 시외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그의 수도자들이
성벽 속에 안장했는데, 1354년과 1358년에 사라센인들이
침략했을 때 안토니누스 성인에게 기도하여 침략군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소렌토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 요한 밥티스타(John Baptist)
축일 2월 14일
성 요한 밥티스타(Joannes Baptista a Conceptione)는
에스파냐 톨레도(Toledo)의 알모도바르 델 캄포에서
태어나 톨레도와 바에자에서 공부한 뒤에 삼위일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는 1597년에
개혁 삼위일체 수도원을 발데페냐스(Valdepenas)에
세워 2년 후인 1599년에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얻었다.
이들이 소위 '맨발의 개혁자들'이다. 숱한 난관 끝에
이 개혁자들은 그의 생전에 34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
성 콘란(Conran)
축일 2월 14일
스코틀랜드의 오크니(Orkney) 제도는 성 팔라디우스
(Palladius, 7월 7일)와 성 실베스테르(Silvester)의
노력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는데, 그 지방의
중심지인 메인랜드 섬의 커크월(Kirkwall)에서는
성 콘란 주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절제 있는 생활과 뛰어난 성덕으로 가톨릭 교회가
크게 꽃피우게 했음은 확실하다.
♡2월 14일 오늘의 성인♡
2016. 2. 12. 오후 5:33:35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