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11월15일)

2014. 11. 15. 오후 5:37:31

글자


♡11월 1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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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비부스(Abibus)

성 구리아(Gurias)

성 사모나(Samonas)
 
축일  11월 15일 

시리아 에데사 성당의 부제인
성 아비부스(Abib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친구인 성 구리아(Gurias),
성 사모나(Samona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후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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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시데리오(Desiderius)
 
축일  11월 15일 

성 데시데리우스(또는 데시데리오)의 양친은
알비(Albi) 지역에 넓은 토지를 갖고 있던
귀족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지극한 신심을
가지고 있어서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는 집안의 지위 때문에 국왕 클로테르 2세의
궁중에서 고관직에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메스(Metz)의 성 아르눌푸스(Arnulphus)와
성 엘리기우스(Eligius)를 비롯한 많은 분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
루스티쿠스(Rusticus)는 사제였다가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곧 살해당하였는데, 그 후임으로 데시데리우스가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때 그는 평신도였다.

그는 참으로 열성적이고도 힘찬 주교로서
교구의 모든 영적인 일과 현실적인 일들을
처리하여 높은 공경을 받았다. 그는 귀족들을
종용하여 신심적인 기반을 단단히 하도록 하였고,
남녀 수도회의 발전을 독려하였다.
또한 자신이 세운 수도원을 직접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성 아만티우스(Amantius)의
수도원을 건립하였고, 세 곳에 큰 성당을 지었다.

데시데리우스의 사목원칙은 항상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 향상이었으므로 성직자
교육에 힘썼고,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킨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알비 근교에서 운명하였으나
카오르에 안장되었다. 그의 무덤에서는
기적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디디에르(Didie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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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폴도(Leopold)
 
축일  11월 15일 

성 레오폴두스(Leopoldus, 또는 레오폴도)는
오스트리아의 가르스에서 태어나 독일로 가서
파사우(Passau)의 성 알트만(Altman) 주교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23세의 나이로 부왕을
승계하였다. 1105년에 그는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딸인 아녜스와 결혼하였다.
그는 1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유명한 역사가인 프라이징(Freising)의
오토(Otto)이다.

성 레오폴두스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클라인마리아첼(Kleinmariazell) 등지에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1125년
독일 황제로 대관하는 것은 거부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통치하였는데, 온전히
그리스도인다운 자세로 권력을 행사하였으므로
국민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고,
148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
(Innocentius VIII)의 의해 시성되고,
1663년에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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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루치아(Lucy)
 
축일  11월 15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나르니에서
11명의 형제 중에 맏이로 태어난 루치아(Lucia)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키로 작정하였으나,
그녀의 나이 14세 때에 거의 강제적으로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약혼반지를 버리고 완강히
거부하다가, 다음 해에 그 젊은이와 결혼하기로
약속하였다. 이 약속은 그녀가 고해신부의
충고도 있었지만 성모 마리아를 환시를 통하여
보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명목상의 부부였지 실제상의 부부는
아니었다. 이렇게 3년을 살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허용하자, 그녀는
도미니코 재속 3회의 수도복을 입고 비테르보
(Viterbo)의 공동체에서 생활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다가
오상 성흔을 받았다. 매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피가 흘렀는데, 3년 동안이나 계속되니 이를
숨길 수 없었다. 교황청과 의사들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고, 그전의 남편도 이 현상을 보고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또 페라라(Ferrara)의 공작 에르콜레는
그녀를 위해 수도원을 지어주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그러나
1505년부터 그녀는 대중들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39년을 수녀원 안에서만 살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1544년에 그녀가
운명했을 때 사람들은 그때까지 그녀가
살아있었음을 알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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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페리오(Luperius)
 
축일  11월 15일

성 루페리우스(또는 루페리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였다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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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르도 화이팅(Richard Whiting)
 
축일  11월 15일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 화이팅은
서머싯(Somerset)의 위링턴 출신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1501년에 웨일스(Wales)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1525년에 월시 추기경에 의하여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 잉글랜드(England)에는 헨리 8세의
수장령이 반포되던 시기임으로 토마스 모어,
피셔 및 카르투지오회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반대 운동을 전개할 뿐이었다.
이윽고 1539년이 되자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수도원이 폐쇄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1539년 11월 14일 원장인 리카르두스 화이팅을
비롯한 수도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의 머리는 거리에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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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말로(Malo)
 
축일  11월 15일

영국 사람들은 성 말로를
마쿠투스(Machutus), 마클로비우스(Maclovius)
또는 마클루(Maclou)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는 웨일스(Wales) 사람으로서 그곳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장성하여
수도자가 될 뜻을 부모에게 밝혔을 때
거절을 당한 후, 그는 즉시 시베른의 어느 섬으로
잠적해버렸다.

사제가 된 후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그 자리를 사양하고 은퇴하여 영국을 떠나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에 상륙하였으며,
알레스(Aleth) 등지를 돌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을 세우고,
지방 족장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몇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시작하였다. 그는 말을 타고
다녔으며 시편을 큰소리로 외우며 다녔다.
그러나 주민들의 적개심이 너무나 심하여
33명의 수도자와 함께 그곳을 떠나
생트(Saintes)에 정착하였다. 그의 선교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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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쿤두스(Secundus)

성 피덴티아누스(Fidentianus)

성 바리코(Varicus)또는발레리쿠스(Valericus)
 
축일  11월 15일 

성 세쿤두스(Secundus)와
성 피덴티아누스(Fidentianus) 그리고
성 바리쿠스(또는 바리코)는 로마제국
속령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에 대한 다른 내용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성 바리쿠스는
발레리쿠스(Valeric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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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베르토(대)(Albert the Great)
 
축일  11월 15일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남부 독일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소도시 라우인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시기에 가족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쾰른(Ko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알베르투스는 1220대말
힐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강의하였다. 쾰른으로 돌아올
즈음에 그의 지식과 강의에 대한 명성은
날로 치솟고 있었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하여 1245년부터 그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토마스 데 아퀴노
(Thomas de Aquino)가 있었다. 그는 토마스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이말 그대로 토마스 데 아퀴노는 1274년
죽을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1248년 도미니코회는 쾰른에 ‘수도회 대학’
(Studium Generale)을 설립하고 초대학장에
알베르투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 철학과 교수로서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1254년에 알베르투스는 독일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Rome)로 갔는데, 그곳에서
빌리암 아르무르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데 진력하였다.
빌리암은 그 후 알렉산데르 4세 교황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하였다.

알베르투스는 1257년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학업에 전념하다가 1259년 타렌타시아의
베드로(Petrus)와 토마스 데 아퀴노와 더불어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였다.
그의 소망에 반하여 그는 1260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서임되었으나 쾰른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2년 후에 사임하였다. 그는 1274년의
리옹 공의회(Council of Lyon)에서 크게
활약하였는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또한 알베르투스는
1277년 파리(Paris)의 스테파누스 탕피엘
주교와 그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대항하여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입장을 옹호한
사건도 유명하다.

그 당시 알베르투스는 소위 만물박사로 통한 듯하다.
그의 저서에는 성서와 신학 일반은 물론 설교,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으며, 그의 관심은
천문학, 화학, 생물학, 인간과 동물의 생리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이 돋보인다.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이런
종합을 완성한 신학자이다.

성 알베르투스는 1931년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 칭호와 더불어 시성되었고,
과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위대한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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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제니오(Eugene)

축일  11월 15일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프랑스 파리(Paris)의 초대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동료로
파리 근교의 어느 곳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로마 순교록은 그를 에스파냐 톨레도
(Toledo)의 주교인 성 에우게니우스(11월 13일)와
혼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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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11월 15일

놀라의 성 펠릭스로 알려진 두 명의 성인이 있다.
오늘 기념하는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나폴리
(Napoli) 부근 놀라의 초대주교로 30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
그보다 더 잘 알려진 다른 놀라의
성 펠릭스 신부는 1월 14일에 그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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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핀타노(Fintan)
 
축일  11월 15일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 태생인
성 핀타누스(Fintanus, 또는 핀타노)는
노르웨이의 침략 당시에 노예로서
오크니(Orkney) 섬까지 끌려갔으나, 다행히
도망하여 스코틀랜드의 어느 주교의 보호를
받고 지냈다.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위스 샤프하우젠(Schaffhausen) 근교
라이노 섬의 숲 속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의 성덕은 널리 알려졌고 명성은 더 높아갔다.
그 27년 동안 그는 고독한 생활을 하였는데,
자기 방에 불을 지피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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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후고 파링던(Hugh Faringdon)
 
축일  11월 15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남부의
버크셔(Berkshire) 출신인 후고(Hugo)의
본명은 쿡(Cook)이며, 레딩(Reading)에서
수도자가 되었다가 1520년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수도원의 규칙을 일신하고, 교리를 잘
가르치는 것으로 매우 유명했다.
영국 국왕 헨리 8세도 그를 방문하고는
‘나의 원장님’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는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의 간계에
의하여 법정에 소환되었다가 풀려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539년에 그의 수도원이 포위되었고
그는 런던탑에 갇혔다. 이 모든 일은 헨리 8세의
수장령을 거부한 죄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는 1539년 11월 15일 레딩에서
순교하였고, 1895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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