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갑니다.
처음보다는 많이 익숙해져 택시 운임도 흥정해서 타보고, 시내에도 다녀왔네요.
꿈 속에서 택시 운임 흥정하다 저도 모르게 높은 운임을 주겠다고 해놓고 차 타고 가는데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차 속에서 실랑이 중에 잠을 깬 적이 있어서 긴장 많이 했었는데 나름 리마에 오래 산 사람인양 능청스럽게 잘 넘어 갔습니다.
모국어로 대화하지 않아서인지 외국 선교사들과 얘기할 때 개운하지가 않네요. 하고 싶은 얘기,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탁탁 나오면 좋겠지만 턱하니 막혀버립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머리는 이해하고 받아들여도 가끔씩 마음이 못 받아들일 때도 있답니다.
최근에는 리마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사목하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방문했습니다.
성당과 공소를 방문하고, 여러 시설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지역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매우 많은 길거리 개들이 동네마다 힘 없이 쓰레기를 뒤지며 삽니다. 가끔 사람도 뒤지지만요.
새벽 녘에는 동네 수탉의 선창을 시작으로 많은 개들이 화답송을 하며 사람들의 하루를 열게 합니다.
가끔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많은 개들이 으르렁~ 제창을 하는데 문제는 사람을 물려고 달려든다는 거죠.
이곳 사람들이 조그만 돌이나, 물을 뿌리라고들 알려주는데
저는 나중에 개사료를 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리마의 성인 중에 한 분인 마르틴 데 포레스 성인의 성상을 보면 발 밑에 쥐, 고양이, 개가 함께 있답니다. 이 세 동물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을 것 같은데
어찌 같이 있을까 하고, 같이 동행한 선교사와 얘기하다가 아마도 성인의 간구를 통해 불목대신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름의 추측도 가져 봅니다.
페루는 가톨릭 국가라 세례와 견진을 교육 과정 특히, 진학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다루기에 한국과 같은 예비자 반이 운영되진 않지만, 연령 별로 세례와 견진 교육을 받도록 합니다.
봉사자들은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봉사합니다.
허나 이곳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필요할 때만 반짝하고 나타나는 이들이 많고, 냉담자가 많다고 합니다.
미사를 몇 번 참여했지만, 제 시간에 미사가 진행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조촐하게 모여, 바로 바로 독서와 화답송을 정하고
전례에 참여하는 모습도 많고, 노래책 없이 꼬깃꼬깃한 프린트 한 장 앞뒤로
가사만 적힌 노래를 어두운 불빛에 부르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가끔 동네 개들도 궁금한지 어슬렁 와서 미사 참례하는 교우들의 몸 냄새를 맡고
제대 앞에 앉아 자기 몸을 여기 저기 긁고 있는 모습,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 모습이 일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모습... 아직은 스페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본의 아니게 주변의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가난함과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을 길러내는 것이 많이 힘겨운 이 곳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을 얘기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이 아주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고민이 생깁니다.
인간의 존엄함과 품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서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푸에블라 문헌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방자이신 그리스도'... 가난함으로 부터, 교육의 부재로부터, 여러 폭력으로부터,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해방을 위해, 그 존엄함을 위해 당신 아들을 통해 그 품위를 보여 주셨는데, 이 같은 진정한 해방은 사회의 변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사회의 변혁으로 살림살이가 조금 낳아질 순 있겠지만, 진정한 해방은 자신의 복음화, 가정의 복음화, 사회의 복음화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머리가 띵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응시하고, 관찰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열 흘 후에는 아마도 볼리비아에서 언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우주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