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
김선기❘가톨릭의 참된 복음화와 진보정치를 꿈꾸며,
자신의 수호성인인 토마스모어의 삶을 닮고자 일일우일신하는 청년
지난 2월 10일(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이 열렸다. 예년과 달리 작년부터 여름(6,7월) 서품식에서 겨울(2월) 서품식으로 바뀌어 행사를 치렀다. 자연스럽게 그날은 새 신부님들의 발령이 ‘새사제학교’에서 다른 교구들과 같이 바로 본당 ‘보좌신부’로 발령이 나고, 다른 205명 사제들의 인사이동 발령도 함께 발표되는 날이었다.
2009년 2월 16일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선종하시고 추모기간에 그분을 기억하는 많은 교우들의 인터뷰를 봤다.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안동지역에서 본당사목을 하셨을 때 본당을 일시적으로 비웠다가 돌아오시면 성당 언덕에서 신자들이 신부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과 시간이 흘러서 다른 임지로 발령을 받아 떠나시는 젊은 사제를 바라보는 아쉬운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모습들이었다.
필자가 교적을 두고 있는 본당의 신부님께서도 26개월의 보좌신부 역할을 아름답게 마치시고 2월 21일(화)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본당을 떠나셨다. 서울대교구 같은 도시 본당은 어느 본당이나 비슷하지만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의 사목 영역과 대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당 신부님들이 각계각층(?) 신자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가 쉽지 않다. 임기가 차서 주임신부님이 떠나시면 중고등학생, 청년들은 “우리 본당 큰 신부님 이제 떠나시나 보구나~!” 하고, 보좌신부님이 인사이동이 있으시면 장년층 이상은 “아이들과 청년들과 잘 지내시다가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부님~.” 이런 수준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본당은 현재까지 주임신부님 세 분과 보좌신부님 세 분이 거쳐 가셨다. 본당 어른들 말씀으로는 21일에 떠나신 그 꽃미남 보좌신부님이신 최필립보 신부님 환송미사 때 예전과 달리 제일 많은 신자들이 와서 눈물도 흘리고 아쉬워하셨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들 관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이지만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 헤어짐은 못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제서품식 날에 인사이동 소식을 듣고 우리 본당 청년들은 26개월간 본당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주시고 예쁜 꽃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가신 필립보 신부님 환송식을 극비리에 준비했다. 많은 신자들과 함께 하는 19일(일) 주일 청년미사 공식 환송식, 신부님이 전혀 예상치 못하실 2부 환송회도 별도로 역할을 분담하여 10일 이상을 준비했다. 세레나 누나는 회사에서도 잘하지 않는 야근을 신부님 때문에 하고 있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그래도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환송식 식순에 맞춰서 청년회 일꾼들끼리 수차례 회의를 했고 환송식 컨셉을 ‘신부님 울리기’로 정했다.
필자는 그간 신부님께서 활동하신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기초해서 아주 아마추어 수준의 오로지 ‘필립보 신부님 헌정’영상 제작을 맡았고, 성가대의 ‘사명’ 특송과 함께 동시에 묵음으로 동영상이 나오고 특송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헌정 영상이 이어지도록 했다. 마지막 주일 청년미사 때부터 눈물을 참으시던 필립보 신부님은 2층 소강당에서 청년들이 극비리에 준비한 ‘2차 송별식’에서는 손수건이 몇 개나 필요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시고야 말았다. 미션 석쎄스~
4층 성전 송별미사 때 준비된 내용과 다른 차원의 색다른 송별회에서 모든 청년들과 함께 평화의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특히 10지구 청년 담당 신부님을 겸하시면서 본당+10지구 청년연합회 회장으로 봉사했던 소화데레사와 포옹을 하실 때는 그녀와 같이 말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눈물, 그리고 서로 정든다는 것이 저런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립보 신부님을 떠나보내면서 우리 본당 청년들이 더 애틋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 본당으로 발령을 받아서 떠나시는 게 아니고 곧 10년 동안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지원사제로 남미 페루 원주민 선교를 가시기에 더 그랬을 것 같다. 크리스티나와 엘리사벳, 에스델 자매는 신부님이 10년 후에 귀국하면 서로 식복사가 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신부님과 정이 유난히 깊어졌다. 오빠, 형,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하고자 했던 필립보 신부님을 보면서 한 젊은 사제가 어린이, 중고등학생, 청년, 중장년층 신자들에게 어떤 향기를 주고 떠나셨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고 슬퍼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통 신부님 환송미사는 성가대의 특송과 신자 대표의 꽃다발 증정, 송사와 신부님의 답사로 끝마치는 게 일반적이었고 사실 우리 본당도 그렇게 계속 해왔다. 필립보 신부님께서 26개월 동안 모든 신자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었기에 신자들도 정성을 다해서 기쁘게 신부님을 보내드리고자 했던 시간들이었다. ‘필립보 신부님’ 하면 자기도 모르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를 정도로 자신의 이상형이 되어버렸다는 크리스티나와 엘리사벳, 에스델 자매는 벌써부터 신부님만 생각하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그립다고 한다. 최필립보 신부님처럼 한 사제가 많은 교우들에게 아름다운 사제로 기억되듯이 우리 평신도 교우들도 사제들과 다른 평신도들에게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니 필자 자신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
드디어 21일(화) 아침 10시, 평일 오전 미사를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시고 신부님이 임시 거처인 성골롬반 수도회로 떠나신 후 새로 발령받으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께서 오셨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눈물을 보였던 교우들이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을 맞이할 때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꽃다발을 드리고 모두가 함께 안수를 받고 신부님의 2년 사목생활을 위해 다같이 기도했다.
정기적으로 신부님들의 인사발령이 날 때마다 신자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 오실 신부님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조각미남인지, 반전미남인지 인물도 살펴보고 그동안 어떻게 활동해 오셨는지 살펴본다고 한다. 청춘 남녀들이 미팅이나 소개팅할 때 몰래 상대방 블로그나 싸이월드 홈피에서 사진과 글을 미리 보고 장소에 나가는 이치처럼 말이다.
필자는 ‘첫 뜻 등지지 않음이 곧 새로움이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새로 오신 신부님과 첫 대면의 설렘을 2년여 동안 항상 생각하면, 신앙생활이 더 윤택해지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물론 신부님과 신자들이 함께일 때 가능하겠다.
헤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만남, 또다시 헤어짐, 만남 그 연속이 우리의 인생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늘 그립고 아쉬운 헤어짐과 기쁘고 행복한 만남만 계속되길 기도해 본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1015호:우리신학연구소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