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 리스따의 큰 별이지다,

2012. 1. 4. 오전 6:47:09

글자

꾸르실 리스따의 큰 별이지다,

그의 이름은  빛나는 큰별 홍화순 마태오님 이시다  서울 대교구 주간이시며 전국 꾸릴리스따 협의회 회장이신 홍주간은 누가 뭐래도 한국 꾸르실료 도입 역사상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수 없지요..그의 업적을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많겠지만 구태어 일일이
꼭 밝히 자면 이지면이 부족할 정도 일것입니다..

 그는 이제 우리곁을 떠나 더이상 이세상에서는 볼수 없는 고인이 되시고 말았습니다.애통한 마음 금할길 없어.그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 하고져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조사겸 그에대한 아는대로 몇자 적어 볼까 합니다.

 그는 늘 일생활이 몸에 베어 있어 이른 새벽부터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여니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출근길 2011년 7월 11일 새벽 3시 38분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생명을 이어 갈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힘든 삶과 죽음이라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꼭 5개월 19일 만인 2011년 12월 30일 오전에 2011년의 마지막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선종하시게 됩니다.

 다음날 익일 비보를 접한 형제 자매님들 그리고 일반 조문객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엄청난 화환과조문객들로 홍화순 마태오 주간의 영혼을 달래주고 위로하는 끊임없는 애도와 연도로서 끝없이 이어져 갔습니다..

또 그 다음날 2012년 1월 1일에는 양력설에다 일요일로서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지금 의정부 교구장님 이신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이 오셔서 역시 많은 조문객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시게 되는 예기치 않던 순서도 있었답니다. 연도 드릴때나 미사드릴때는
 여기저기서 훌적거리며 참지못한 슬픈 눈뭃을 흘리는 자매님들도 보이더군요.
저도 분위기에 휩싸여 몇번 눈시울을 붉혔지요..,

 

내가 아는 홍화순 주간님은 홀홀단신으로 상경하여 갖은 고생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쪽집게 과외선생으로 부터 별의별 일을 다 하면서 고생스럽고 고독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요.이러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않고 굳세게 살아온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로 평소에 내가 가장 존경 해온 마음이 여린 눈물 많은
친구이지요.

내가 울뜨레아 간사를 맡고 있을때 서울 남성 74차 <1984년 6월21일 -24일>로꾸르실료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크게 자라 큰 나무가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래서 저는 꾸르실료 입소자를 위해서 라면 결코 지금도 늙은 이 나이에도 소흘히 하지 않는 이유라는 것을 이제사 밝히고 싶네요.입소자를 위한 열정은 곧 기도이니까요.홍주간 다음으로 이어 의정부 교구장님이신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도 평신부님이실때 제가 보내드렸지요.주교님께서 꾸르실료를 받으셨으므로서 주교활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꾸르실료를 받지 않은 주교님과는 차이가 있어 꾸르실료를 이해하시는데만 해도 도움이 되실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외적으로는 외모부터가 억세어 보이는 인상으로서 말투 또한 거칠어 젠장 .제기랄비러먹을.등 많은 低俗語를 많이 쓰는 편이지요..그러나 내적으로는 남자로서 심할정도로 여린 마음이라 눈물이 많은 친구지요. 사랑. 동정심 연민의 정이 많아 어려운 사람에게는 힘 자라는 데까지 도와주고 돌보아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랍니다.꾸르실료 들어 갔을 때 일이 기억나는군요.영적빨랑까로 우리 마누라  안나의 편지를 받고 .눈물을 참을수없어 화장실에가서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는것 아닙니까.그때 그감동을 잊고 싶지 않아 늘 마나니따 만은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하는 사람이 되었지요..현양회 회장을 하고 있을때 한창 꾸를실료 서울본부가
어려울때 결국 추경님의 부르심을 받고 22대 24대 25대 주간까지 하게된거랍니다. 그는 꾸르실료에 죽고사는 메니아 이지요.

 그는 불행하게도 슬하에 자녀가 없어 늘 외로워 하면서 자녀 많은 가족을 보면
늘 부러워하곤 했지요.성모병원 여러 영안실을 둘러 보면 방마다 고인의 게시판에는 고인의 이름 옆에는 많은 유족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홍주간 게시판에는 고인 옆에 부인 이름만 달랑 외롭게 적혀있는데 얼마나 제마음이 아팠던지-

 2012년 1월 2일 아침 9시 그 지겹던 성모병원을 뒤로 하고 평소에 당신이 열정적으로 하느님께 봉사하시던 정든 절두산 꾸르실료 본부 강당에 당도하여 10시 부터서울 교구 꾸르실료 장으로서는 처음있는 장레 미사를 입추의 여지 없이 강당과 경당까지 메운 형제자매님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임덕일 아마투스 책임 신부님을 중심으로 물경 10여명의 다른 사제들과 함께 장례미사를 거행하게되는데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하여 저도 끝내 울음을 참을수가 없어 흐르는 눈물을 닦곤했답니다.홍주간을  그리워하면서-.말입니다.

 장례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일산에서 사는 저의 큰딸 선화도 왔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 온식구가 참여한 가장 슬픈 날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날이기도 한 셈이 되었지요.꾸르실료건물 밖 온 마당에는 각성당
울뜨레아에서 가져온 울뜨레아의 붉은 깃발로 가득하여 마치 레지오장을 할때
레지오의 붉은 깃발을 연상하게 하는 장관을 이루었답니다.

 다음 순서로 화장시간 오후 1시로 잡혀있는  벽제 화장장을 향해서 달려가 
오전 11시 40분경에 도착 했지요.우리는 거기서 기다렸다가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을 인수하여 .곧장 절두산 성당 납골당에 도착하니 임덕일 아마투스
꾸르실료 책임 신부님께서 울으셨는지 아니면 너무피곤 하셔서 그런지는 모르나 핏발이 서신 눈빛이
너무 안스러웠습니다.26대 장주영요셉 신임주간님과 함께 임덕일 아마투스 신부님의 주례로 납골예식을 간단히 마치시고 곧 유골을 납골하고 참여한 많은 분들이 홍주간 납골실을 돌아 가면서 온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따뜻한 유골함을 쓰다듬고 기도하면서 홍주간님의 장례일정을 이렇게 하여 무사히 전부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 오니 오후 5시 30분이였습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홍화순마태오 형제님 !
이세상 바쁜일 접어두고 이제 편히 쉬소서 그동안 일 많이 했습니다.
게으름 피지 않고 부지런히  열심히도 살아온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하루24사간을 48시간으로 사신 당신을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의사말에 의하면 환자 본인이 한번 호흡하는데는 무지한 고통이
따른다고 들었습니다.5개월 19일동안 기나긴 시간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식물인간으로서 바티시는데 얼마나 고통 스러웠습니까?

 저는 집사람에게 말 했답니다.홍형제는 이세상에서 보속을 다 마치고
깨끗한 영혼으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고 말입니다.제발 제말이 맞기를-

 당신만을 기다리던 우리 베타니아 모임에서는 당신을 기다려봐야
오지 않을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세상돌아가는 톱 뉴스
거리는 이제 당신 말고 누구한테서 듣겠습니까! 당신이 그립습니다.

주님 !홍화순마태오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맞아 주소서
모든 성인 성녀와 함께 천상낙원에서 살게 하소서!
살아 있는 그의  유가족들도 생각하소서!
우리모두 그를 배우고 그를 닮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후기

저의 소감
평소에 그를 조금이라도 과소평가 한 저의 마음이 너무나 아퍘습니다.
그가 없는 자리가 그렇게 큰 줄을 제가 몰랐던 것이지요.
너무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서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였을까요?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한갖 목수의 아들로 시답잖게 보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만은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지요.

 그의 장엄한 장례미사는 참석한 많은 꾸르실리스따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많은것을 깨닫게 하여 한알의 밀알이 되었음을 저는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살아온 부인께서도 남편의 자리가 그렇게 큰줄은 몰랐지요.
그러나 이제는 많은 변화를 보였습니다.평소에 남편의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인도나 티베트등 고대 수도법등

을 배운다고 외국으로 돌아 다니면서 집을 많이 비웠으니 홍주간 당신이
얼마나 더욱 외로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더욱 하느님께 매진한것이리라.!
홍주간 부인 헬라나 자매님은 남편을 간호하면서.너무나 많은 방문객을
맞으면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고 남편이 잘 살아왔다고
여러번 이얘기를 하더랍니다.제가 직접들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끝

                                                                               2012년 1월 3일 화요일 
                                                                               부간사 여 영 욱 베드로
홍화순 마태오
1942년 9월 13일생<양력>

학력사항
1961년 중동고등하교 졸업
1968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
         년 헬싱키 경제 경영대학원 MBA
         년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대학원 경영 박사.

경력사항
1969년 - 1980년 신아일보 사회부 기자
1979년 - 1980년 한국기자협회 감사
1980년 -                신아일보 해직
1985년 -  한국경제신문사 사업부장
1988년    한국경제신문사 부국장대우 총무부장
1990년    한국경제신문사 관리국장
1992년    한국경제신문사 광고국장
1994년    한국경제신문사 이사대우 광고국장
1995년    한국경제신문사 이사
1997년    한국경제신문사 상무이사.
1999년 - 2001년 同 상임감사
2001년 - 2006년 산업정책연구원 상임고문
2003년   헬싱키 경영대학(HSE) 한국총동창 회장(현)
산업정책연구원 공동대표이사 원장
(주)에더스 회장
2010년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현)
2010년 - 2011년 同 총장 직대

꾸르실료 약력
꾸르실료 수료-서울교구 남성74차 1984년 6월 21일- 24일
15회 봉사 --1986년 11월 (남성94차)--2001년 4월까지
회장봉사 3회 (1995년 11월 ,96년 1월 ,2001년 4월)
교수부 차장(1991년-1992년)
교수부 부장(1994년--1995년)
홍보부 부장(1996년 --1997년)
주간 ; 22대(2003년 2월 --2005년  10월)
           24.25대(2008년 11월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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