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시는 신부님을 공개적으로
몰아 부쳐서야 되겠습니까?
신부도 신부 이전에 우리와 꼭 같은 하나의 인간이다.(좀 이해 하면 안되겠습니까?)신부님 나름대로 계획과 생각하는 그림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주면 안되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무엇을 위해 있으신지를 기다리고.헤아리면서 말이다.-呂>
지금부터 40년전으로 그슬러 올라가 40대의 왕성한 사목활동을 하면서 기뻤던 일과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상세하게 썼던 원고를 다시올리면서 원고가 너무 길어 순명 (1-2)의 내용인즉 간략,요약해서 대강을 설명하자면1964년 우여곡절끝에 교리공부라는 것을 통하여 약300교리문답을 달달외어 신부님으로 부터 찰고라는 것을 받아 영세를 받고,
그해 12월6일에 혼배를 한 이야기며 성당신축기금을 김수환 추기경님으부터 회식시간에 직접 받은 일이며 반포성당 김영일 주임신부님으로 부터도 신축기금 금일봉을 받었던일, 경갑용 주교님과 식사하면서 낚시 이야기며 낚시를 좋아하시는 경갑용주교님께 낚시에 한번 모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일이며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지금 의정부교구장님이신 이기헌주교님과의 개인적인 친교와 개인적인 정분등 주교님과의 좋았던 한시절을 기록한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당시 83세셨던 노기남 대주교님께서 은퇴하시고 나자로 마을에 기거하고 계실때 우리 몇몇부부는 나자마을까지 가서 주교님을 모시고
개 한마리 잡고하여 백운계곡에서 무더운 여름 하루를 즐기며 넓직한 큰바위 위에서 주교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담소하던일이며 우리 일행중 한 자매님이 주교님께 "주교님은 평생 소임을 잘 마치셨으니 천국에 가시드라도 걱정이 없으시겠습니다."라고 여쭸더니 주교님께서는 갑자기
몹시도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제 멀지않아 하늘나라로 갈터인데 하느님께 무엇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까?요즘은 그것이 큰걱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하루의 해는 저무는데 주교님의 몹씨도
비감에 젖은 표정과 걱정스러운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呂>
이상과 같이 간단한설명으로 생략하고
여기 순명( 3)만을 소개합니다.
순명-( 3 )
저는 그전에 또 한분의 신부님을 모신 일이 있습니다.
이분 신부님께서는 저보다 약 5-6년 년하의 신부님 이였습니다.그러니까 이기현베드로 주교님 보다 선배 신부님 이였었지요. 이 신부님께서도 저를 무척이나 저와 저의 가족들을 사랑 해 주셨습니다.예를 들자면 가족 생미사 라든지.연미사 드릴때 , 시작할때, 중긴에 틈만 있으면 특별히 거명을 하시면서 관심을 가지시고 정성들여 미사를 들여 주셨지요.바리톤 목소리로 강론도 아주 잘 하셨습니다. 금언 같은 시구를 썩어 가면서 그야 말로 감동스런 강론에 저는 반햇습니다.그 좋은 부드럽고 굵은 목소리에 걸 맞게 인물 또한 준수 하실 뿐 아니라 몸집도 있으시고 키도 훌쩍 크신 멋진 사나이 였습니다.
특히 자매님들께는 꽤나 인기가 있었지요.이제 막 신앙에 맛을 들이면서 신앙생활을 접한 나에게는 신부님이 그렇게도 어찌나 훌륭하고 멋지게 보이시던지. 신부님은 역시 저렇게 범속하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무엇이나 신부님의 뜻에 적극 동참 했었습니다.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내가 기대하던 신부님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점점 변해 가는것이 아니 겠습니까.!교구에서 정한 사목 지침과 동 떨어진 전혀 다른식으로 사목을 하는것이 였습니다. 사목을 구성했다가 금방 며칠이 지나면 또 새로 개편합니다. 이 일을 되풀이 하다 마음에 안드시면 ,완전히 사목을 해체 하셧다가.좀 쉬고나서, 이번에는 사목 위원회 대신에 들어보지도 못한 자문위원회 라는 기구를 구성 합니다.뿐만 아니라 성당 재정은 아무도 손도 못댑니다.아무 누구도 보지도 못하고,
그내용 또한 오리 무중입니다. 신부님께서 특별히 지정한 그 자매님 외에는 알려고 하지도 말고.관심도 가져서는 안되는 일이였습니다.한번은 해병 소장으로 예편한 분을 사목회장으로 임명해서 미사시간에 전교우들에게 공표하여 인사말까지 하게 하고서는 일주일도 안되어서 사목 해체였습니다.쪽 팔린 회장께서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신부님께 강력히 항의를 하였답니다.이런 저런 일로 성당의 분위기는 말할수없이 시끄러웠지요.참다 못한 신자들은 교구에 투서를 하고 난리였었습니다. 그동안 보고만 있던 나는 어찌 할바를 몰라.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저는 며칠동안 고민을 하다.신부님께 진언를 하여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엇지만.너무나 완고하셔서 씨가 먹혀 들겻 같지가 안했습니다.
아니야! 이것은 구경만하고 방관할 일이 아니야 ! 상식 밖의 다른 잘못된 길로 가시는 신부님을 바로 일깨워 들여야 해 !그러자면 교구 사목국장 신부님<박노형신부님>을 찾아 뵙고.상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교구 사목국장 신부님을 찾아뵈었지요. 전말을 들으시던 사목 국장 신부님께서는 무조건 신자들을 진정 시키고 참으라는것입니다. 국장 신부님께서는 이어서 하시는 말씀인즉 바위를 비유하시면서. 우리가 바윗 돌을 볼때 외관상은 그저 평범한 바윗 돌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안에 황금이 들어있는지 아니면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을지는 오직 하느님 만이 알고 계신다는것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참고 기다려 보라는것이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장신부님은 우리 주임 신부님과는 동창 신부님 이였습니다.저는 생각했습니다.그러면 그렇지 초록은 동색 이라 더니,그래서 시원한 대답을 못하시고 그저 무조건 진정하고 참고 기다려 보라고 만 하셨군. 그러나 워낙 나쁜 소문이 퍼저 교구에서도 어쩔수 없었던지.결국 그로 부터 3-4개월 후에 다른 성당으로 발령 발으시고 떠나버렸습니다. 얼마나.슬프고 마음 아팠던지.정말 한동안 괴로웠답니다. 그동안 잘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생각을 떨쳐 버릴려고 노력 했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성급한 나머지 교구에 찾아간것이 잘 못한 일 이라는것 입니다.그것이 바로 순명을 하지 못한일이라고.-어쩌면 고자질 하러간것이라고 도 생각 할수 있으니까요.
그것만 생각하면 왜 그때 신부님께 진언을 들여 안되면 신부님과 마음이 좀 상하더라도 신부님과 해결 볼 일이 아니었던가.?고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이 일은 죽을 때 까지 평생 나를 괴롭히는 일 중의 하나가 될것입니다.세월이 가고 또 나이를 먹어 갈수록 단 한가지 깨달은것은 신부님께 순명하지 않고 신부님의 뜻을 저버리는것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것이라는것 입니다. 신부님의 죄는 우리의 몫이 아니고 하느님의 몫이라는것을 한참후에 비로서 깨달았다는것 입니다.저의 결론은 하느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오직 순명입니다.교황님은 하느님께 주교님은 교황님께 사제는 주교님께 우리신자들은 신부님께 순명입니다.그것이 우리 교회의 질서입니다.
나를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그 신부님께 찾아뵙고 사죄하고 고해 성사를 봐야 겠다고 시시 각각으로 생각은 늘 하면서도 우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신부님께서 동창신부님으로 부터 내 이얘기를 들으시고 얼마나 원망 하셨을까? 이사건은 죽을 때 까지 나를 괴롭히는 사건 일것입니다.형제 자매 여러분! 제발 아무쪼록 신부님 말씀은 곧 하느님 말씀이라는것을 께닫기를 바라며,.제가 교구에 고자질했던 그신부님은 풍문에 정년을 10년을 앞두고 결국 사제복을 벗었다고합니다. .그신부님은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좀 많았던 신부님에는 틀림없다고 하겠으나 사제복을 벋게하는데는 저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참을수없는 비애와 고통과 자괴감을 금할길이 없답니다.요즘 그지긋 지긋했던 그옛날의악몽이 우리 송파동성당에 되살아나는 것같에 제마음이 몹씨도 펺지 않습니다.
한번사제는 영원한 사제니까요!
2017일 8월16일 수요일. 여 영 욱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