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30 홍성학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제 서품을 앞두고 제일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내가 과연, 사람들에게 주님을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할 이 길을 갈 수 있을가?' '욕망과 이기심으로 자주 흔들리는 내가 그것들을 억누르고 추스르며, 사제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한마디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제의 길'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회의가 끊이질 않 았습니다. 저의 부족함에 대한 생각은 잠시도 저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하도 답답하고 불안해서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서는 헤어날 수가 없었 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성경을 들고 그냥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한 구절에 빠지 고 말았습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나는 이렇게 괴롭고 힘든데, '편하고 가볍다'는 말씀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나, 내 고통, 내 어려움, 내 갈등 속에만 빠져 있었습니 다.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자신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그분께서 채워 주시도록 그 분께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만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제 결단의 중심은 '주님'이 아니라 '나'였고, 제 삶의 주어도 '주님'이 아니라 '나'였 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의 부족함, 저의 모자람 속에서만 방황했으니, 거기서 뭐 좋은 게 나올 수 있었 겠습니까? 그런 제 안에서는 더 나은 것들이 자리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믿고 맡기자, 바로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편하고 가볍게 하신다는데……. 그분이 그분이 내 삶의 주어가 되셔서 이끌어 주신다는데……. 아무것도 확실히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를. 미지의 세계를. 그분이 주관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맡겨 드리자.' 오늘도, 아니 평생을, 이 문제로 싸우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서는 온전히 완성되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1989년 2월 4일 수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