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태양은 못되더라도

2014. 5. 18. 오후 4: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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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5월 18일 부활 제 5주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

 

 몇 달 전 벗들과 처음으로 대만을 여행하였습니다. 관광지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지우펀'이라는 옛 광산 마을입니다. 바다가 멋지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옛 골목과 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풍치가 그윽한 곳입니다.

전통 찻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우롱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바라본, 막 해가 질 무렵의 바다 경치는 절경이었습니다.

또한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면서 등이 하나씩 켜지는 골목길은 낭만적이면서도 정취가 배어 있었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지우펀에 가고 싶었던 것은 대만의 역사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주 4·3 사건'이나 '5·18 민주화 운동'의 비극과도 비교되는 대만의 '2·28 사태'를 주제로 한 이 영화를 1990년 극장에서 본 기억이 매우 큰 체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지우펀 마을은, 시대의 폭력으로 고통 받고 희생되었으나 이제 숭고한 희생자로 기억되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지금 그곳은 아름다운 관광지로, 느긋한 분위기의 차 한 잔이 어울리고 젊은이들의 즐거운 수다가 골목을 채우는 곳
니다. 그래도 가끔은 여기저기서 '비정성시'란 현판을 보기도 합니다. 
때가 차서 지난날의 비극의 흔적이 현재의 행복에 자리를 내놓는 것은 순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비극을 망각
고 왜곡하는 것이 지금 행복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입니다. 기억의 맥박을 잃지 않는 것이 오히려 희생의 자리에서 생명과 번영을 길어 낼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이 폭력의 악순환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의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의 광주를 민족의 십자가로 기억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억만이 화해와 생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비극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이 순환할 수 있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김준태 시인의 '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민족의 십자가 광주를 기억합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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