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은 순교자 성월
당고개 순교 성지는 그 규모면에서는 매우 작은 곳이다.
그러나 절두산, 새남터 등의 순교지에 이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곳 성지를 찾는 장소로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곳에서 가톨릭 신자들 열 명이 1839년의 기해박해 때에 순교를 당했고, 그 중 아홉 명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해서 ‘여성 성인의 터전’이라 불릴 만큼 그 중요성이 크다.
순교자들 모두 자신의 신념을 다하여 후세에 본이 될 만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사람들의 신금을 울린다.
유독 그녀만이 성인이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되면서 당고개 성지의 대표적인 사연이 되었다.
그 사연을 들어보자!
그녀의 이름은 이성례 마리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최경환 성인의 부인이자 우리나라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다.
당시 최양업은 사제 수업을 위해 마카오에 유학을 떠난 상태였다.
국법에 따라 부모와 자식을 함께 투옥하지 않았지만 자식을 사제로 키우기 위해 유학을 떠난 가족에게는 그 조항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성례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투옥된다.
한 아이가 감옥에서 굶주려 죽게 되자 이성례는 나머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배교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함께 풀려나고 아이들이 동냥을 나간 사이 다시 감옥에 들어온다.
마리아는 열심한 교우들의 권면으로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재판관 앞에서 배교한 것을 용감히 취소한다.
감옥으로 찾아온 어린 네 형제가 창살을 붙들고 어머니를 목메어 부르자 마리아는 또 배교할까 겁을 먹고,
돌아 앉아 아이들이 울며 부르짖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등을 보인 체 미동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
그래도 일찍 철이 난 둘째아들 희정은 어머니 마음을 알고, 울부짖는 어린 동생들을 달래서 발길을 돌렸다.
그 후 아들 셋은 상가 집, 잔치 집을 찾아다니면서 쌀을 얻는다.
쌀 한 말을 얻어 가지고 사형집행 하루 전날에 어머니 목을 자를 망나니 집을 찾아가 쌀을 주면서 “아저씨 부탁이 있어 왔어요.”
“무슨 부탁이냐?” “아저씨 오늘밤에 칼을 잘 갈아서 내일 한 번에 엄마 목이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 당시 망나니 들은 천주교신자들을 죽일 때 고통을 주어 죽였습니다.
처음에는 칼 등으로 목뼈를 먼저 부러뜨리고 그 목뼈가 덜렁덜렁 하면 칼을 바로 잡아서 목을 세 번, 네 번 나누어서 끊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있는 대로 주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쌀을 모아 가지고 가서
“아저씨 밤에 칼 잘 갈아서 우리엄마 안 아프게 한 번에 목을 잘라 주세요.”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망나니이지만 자기도 자식을 기르는 사람인지라 어찌 가슴이 메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애들아 알았다. 이 아저씨가 칼 잘 갈아서 엄마 안 아프게 한 번에 목 쳐주마.”라고 대답을 합니다.
엄마는 면회 온 지인들을 통해서 형장에 절대 아이들 넷이 나오지 않도록 신신 당부를 합니다.
형이 집행되는 날, 마리아는 마당 한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목을 길게 들어냅니다.
망나니는 주변을 돌면서 칼춤을 추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서 “엄마” 하는 소리가 들려 마리아는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앞을 보니까,
아이들 넷이서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데 제일 작은 아이가 엄마 하며 부르니까, 큰 아이가 작은 아이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거예요.
망나니도 그 광경을 보면서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단 한 칼에 마리아의 목을 떨어뜨립니다.
이렇게 최양업 신부 아버지는 매 맞아 죽고, 막내 동생은 굶어죽고, 엄마는 목이 잘리는 군문효수를 당합니다.
그날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단칼에 치명하는 모습을 먼발치로 바라본 어린 네 형제는 저고리를 벗어 하늘에 던지며,
용감한 어머니의 순교를 기뻐했다고 전해져 옵니다.....
* 당고개 순교성지, 수리산 성지 방문 후 너무 감동적인 사연이라 정리해 보았습니다.〈장마티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