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요한8,51~59
오늘 복음에서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다인들이 대듭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
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연계되어 있는 관계성으로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 줍니다.
첫째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즉 내 아버지는 우리의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라는 서술로써 자신
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둘째로,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그분, 즉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서술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셋째로,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는 서술로써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 질문을 합니다.
사제인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나는 누구인가?
신자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오늘 말씀에 비추어 찾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반문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진정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고백하는 깊이의 정도가 믿는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입니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아는가?
하느님을 몸으로 또 마음으로 아는 정도가 신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입니다.
나는 정말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말씀을 지키고 있는 정도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또는 사제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의 깊이에 따라, 우리는 그만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 정체성의 깊이에 따라, 희망하는 그날을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우리들 스스로 자문해 봅시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로 희망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 희망으로 기쁨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다름 아닌 하느님 앞에서 고백하는 나의 정체성의 깊이일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의 깊이 만큼 나는 희망의 삶을,
기쁨의 삶을 삽니다.
요사이 하느님 앞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떤 모습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이어지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홍 미카엘 신부님 복음 묵상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