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토요일 요한 11,45~56
어제에 이어진 오늘의 복음에서, 어둠의 세력은 서서히, 그리고 밀도 있게 드러
나고 있습니다.
라자로를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킨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자, 대사제들
과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
게 하면 좋겠소? 하며 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구체적으로 꾸미기 시작합니다. 대사제 가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하며 회의를 주도해 나갑니다.
명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성전 뜰 앞
에 모여서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하며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을 향해 고조되어 가며 무엇인가 결판이 날 것 같은
분위기 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뒤로하시며, 더 이상 유다 지방에서 드러나
게 나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 근처에 있는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머무십니다.
광야에 인접해 있는 곳,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자그마한 이 고을은 광야가 한눈
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광야가 훤히 보이는 이곳에 머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이전에 당신께서 유혹을 받으시던 곳이 아니던가?
얼마 전에 사탄에게 시달리던 이곳,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에게 빵
이 되라고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등의 유혹을 받으며 배고픔과 외로움으로 시련의 시기를 지냈던 그때가
되살아나지 않았을까?
또한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놓고 극심한 유혹과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훤히 내다보시는 주님이 아니신가? 쓸쓸함과 외로움이 엄습해 옵니다. 두려움으
로 전율이 일어납니다.
고통은 직접 당할 때보다 그것을 내다볼 때 더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분명 하느님 아버지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만이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전부이
셨을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만 의지할 뿐 그 어떤 대책도 없습니다.
맡기면서 견디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 속에서 온갖 유혹과 시련을 받아들이셔야 했습니
다. 아버지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 우리들.
나에게 다가오는 작고 큰 고통, 그리고 때때로 형언키 어려운 존재의 소멸이라
는 두려움을 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십자가를 수락하며 하느님 아버지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한없이 맡기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나는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감지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감지한 나는 주님의 크신 능력을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홍 미카엘 신부님 복음 묵상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