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월요일 마르 12,1~1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 그리고 원로들에게 하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확을 파고 탑을 세웁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그것을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종 하나를 소작인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을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주인은 다른 종을 또 보냅니다.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
욕합니다.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이번에는 그 종을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더 많은 종을 보냈으나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립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 해 주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점점 포악해져 가는 소작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는 주인은 도대체 어떠
한 마음이었을까?
혹시 아들이 다치거나 죽음을 당하리라는 불길한 걱정이나 의심을 하지는 않았
을까?
사실 사랑하는 아들을 그러한 소작인들에게 보내면서 의심과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은, 삐뚤어진 소작인
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는 데에 온통 정신이 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 본심이 원래 착한 사람들이야! 틀림없이 내 아들을 보면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거야!' 하면서, 그들의 양심을 살리는 데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버린 아버지의 마음이었으리라 묵상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나를 죄에서 구출하고 살리시기 위한 것입
니다.
나를 끝까지 믿음으로써 나의 양심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포함에 우리를 향한 끝없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드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아드님께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죽음을 불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됩니다.
그 사랑에 의지하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갑니다.
홍 미카엘 신부님 복음 묵상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