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7.05) - 연중 제14주일 화요일

2005. 7. 5. 오전 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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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5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창세기 32,23-33
그날 밤, 야곱은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나루를 건넜다. 그들을 데리고 개울을 건넌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그분은 야곱을 이겨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분은 동이 밝아 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 주지 않으면 놓아 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 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이 말을 듣고 야곱이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은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야곱은 “내가 여기서 하느님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그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떠올랐다.
이스라엘 사람이 오늘날까지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 것은 야곱이 환도뼈를 얻어맞아 그 힘줄이 상했기 때문이다.


복음 마태오 9,32-38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린 벙어리 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놀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라면서 웅성거렸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며칠 전, 같은 강화에 있는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에 방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수련원에 가보지를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얼마 전 모든 공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축하도 겸해서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가겠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역시 그 수련원에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자’였지요. 수련원은 제가 있는 곳보다 더 시골로, 피자집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아무튼 저는 피자 두 판을 들고서(참고로 도시에서 피자 한 판 가격으로 이곳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세 판까지도 살 수 있답니다), 수련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계시는 수녀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새로 입주한 곳을 둘러보았지요. 그런데 그 수녀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신부님한테는 지금처럼 긴 머리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상당히 부드러워 보여요.”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우선 머리숱이 많아서 짧게 자르지 않으면 너무나 덥습니다. 또한 머리카락의 힘도 너무 쎄서 짧게 자르지 않으면 옆머리가 붕 뜨거든요. 이렇다보니 관리하기 쉬운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항상 선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머리카락이 너무나 길어서 수련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이발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수녀님의 ‘부드러워 보인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수련원을 방문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발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집으로 그냥 들어가는가?

결국 저의 선택은 그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머리카락이 붕 뜨고 또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덥다 하더라도, ‘부드러워 보인다.’는 그 수녀님의 말씀으로 인해, 미용실이 아닌 집을 선택하게끔 했던 것이지요.

이 새벽, 길어서 불편한 저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에 대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의 말씀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를 않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이목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즉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선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지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이 전혀 듣지 않으려고 하면 기분이 상당히 나빠지고 서운해집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떠실까요?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과 자기들만 아는 이기심에 어떤 모습을 취하실까요?

사람한테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님께 잘 보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을 서운하게 만들지 맙시다.



더불어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갓난아이가
엄마에게 애정을 보이는건
모유를 먹을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따뜻한 신체 접촉 때문 이라고 합니다.

일상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건
돈이나 물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옷이 별로 없다면 헌옷을 입으면 되고
배가 고프면 물이라도 마시고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직 따뜻한 사람의 위안으로 치유 되는것.

누군가 남몰래
가슴아파하고 있다면
가만히 손을 잡아 주세요.

많이 아파하고 부족했던 내가
이렇게 잘 자랄수 있었던건
차가운 내손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잡아 주었기 때문 입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가슴을 보듬어 주고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세요.

더불어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
언제나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속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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