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11.06) -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2007. 11. 6. 오전 8:33:36

글자
2007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제1독서 로마서 12,5-16ㄴ

형제 여러분, 5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6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7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10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11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13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15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복음 루카 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있을까요? 어제 구반장 야유회를 저 멀리 ‘외도’까지 다녀온 뒤,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묵상 글에는 이러저러한 내용을 적어야겠다고 생각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졸렸습니다. 사실 어제 자정이 조금 못되어서 성당에 도착을 했거든요. 10시간 이상을 버스만 탄 것도 저에게 피곤함을 많이 가중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 자리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난 시간이 5시 30분입니다. 1시간 가까이 잠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얼른 컴퓨터 앞에 와 앉았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어요. 묵상은 했는데, 무엇을 묵상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저의 머리 나쁨을 한탄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길에서 돈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해요.

“나는 그 이전까지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한다. 더군다나 소매치기는 지갑을 훔쳐갔지만 내 생명은 훔쳐가지 못했다. 설령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털어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약탈하지 않고 오히려 약탈당한 것이기에 더욱 더 감사하다.”

돈을 잃고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건강을 잃고도 감사할 줄 아는 자세, 그래요. 가장 어려울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도 무슨 묵상을 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새벽에 묵상한 내용이 지금 쓰고 있는 글보다 더 형편없을 수도 있기에 감사합니다. 또한 다시 새 글을 쓰고 있지만, 이렇게 이 새벽에 다시 머리를 굴릴 수 있게 해주시니 이것 역시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드릴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그 초대를 거부합니다. 밭을 샀다고 해서, 겨릿소를 샀다고 해서, 방금 장가를 들어서…….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핑계지요. 자기가 산 밭을 보기 위해 못 간다고 하는데, 자기가 살 밭을 보지도 않고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또한 겨릿소 다섯 쌍을 사고서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어차피 산 소이므로 나중에 부려 보아도 상관이 없지요. 장가를 들었다면 신부와 함께 그 잔칫집에 가서 인사라도 하는 것이 예의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이 핑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핑계는 그 초대한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각종 핑계를 대면서 주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핑계를 대지 맙시다. 치사해 보이지 않습니까?



삶의 가파른 오르막 길(박성철의 '삶이 나에게 주는 선물' 중에서)

산을 오를 때면 매력적인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됩니다.

힘겹게 올라간 그만큼의 거리를
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편하게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

더운 여름날 산행 중 깨닫게 된
너무도 평범한 이 사실이
내게 더없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과도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힘겹고 고생스럽게
높은 산을 올라가면
그 거리만큼 경치를 즐기며 보다
편안하게 내려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조금 올라가다 힘겹다고 포기하면
그 좋은 경치들을 볼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
사람의 삶과 꼭 닮았다는

지금 그대가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
삶의 가파른 오르막길은 언젠가 반듯이
힘겨움 만큼의 편안함을 선물한다는

삶이라는 산행의 진리를 기억한다면
그대에게 닥친 시련과 힘겨움들도
그리 절망만은 아니겠지요.

댓글 2

  • 2007년 11월 6일 오후 2:16

    가장 어려울 때에도 감사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 글을 읽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2007년 11월 6일 오후 11:28

    감사를 드릴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말에 글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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