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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6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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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로마서 7,18-25ㄱ
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복음 루카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요즘 사람들의 필수품이라고 한다면 아마 휴대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도나도 들고 다니는 것이 휴대전화이고, 그래서인지 미사 중에도 이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얼마나 자주 울리는지 모릅니다. 또한 이 휴대전화로 전화통화 말고도, 문자메시지를 많이 이용하지요. 이 문자메시지가 생활의 한 가지 수단이 되어, 간단한 대화는 이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서 제 카페에서 아침문자 메시지 신청란을 만들어서 아침 7시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신청할까 싶었습니다. ‘기껏해야 100명 정도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300명을 넘어서 현재 한 달이면 만 통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니까 좋다는 사람들, 그리고 짧은(문자메시지의 특성상 80자 이상을 넘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는 등, 많은 분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제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업체에서 경고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복잡하기는 한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것입니다.
“더 이상 스팸 문자를 보내지 마십시오. 이제 앞으로 한 달에 3,000통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스팸 문자를 보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문자메시지로 무슨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스팸 문자라고 했을까요? 바로 성경말씀을 아침마다 대량으로 발송하니까 이러한 연락을 보낸 것이지요. 즉, 그 내용을 본 것이 아니라, 발송되는 수만 보고 스팸문자로 취급했고 저에게 이러한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쓸모없는 하나의 광고성 문자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업체에서 내용이 아닌 숫자만 보고서 스팸문자로 취급했던 것처럼, 듣기만 할 뿐 아무런 응답을 보이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이 결국은 또 하나의 스팸문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이 보지도 않고 버리는 스팸문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보다 보고 듣고 실천하는 말씀이 되어야 비로소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습니다. 사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모범적인 생활이었고, 또 그러한 생활로 사람들의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심한 비난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 없이 성경의 글자만을 읽고 그 글자의 규정대로만 살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위선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쓸모없는 스팸문자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이 말씀에 흐르는 사랑의 적극적인 실천으로 우리 곁에 계속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세요.
나의 결점을 숨기지마라(양창순, ‘마인드포스’ 중에서)
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데이너 버크만은 한 해 매출을 1억5천만 달러나 올릴 만큼 성공한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공황 장애로 갑자기 숨이 막히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으나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했다.
그녀에게는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커다란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심각한 학습장애를 앓는 딸이었다. 그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딸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딸의 문제를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사람들이 알면 자기 인생을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오랜 세우러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이 오고 말았다. 공황 장애로 죽을 뻔한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세상에 자신의 문제를 드러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출판한 것이다.
지금 그녀의 딸은 잘 자라 대학에 입학했고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결점을 터뜨리고 인정하자. 두려움, 걱정, 수치심,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내 삶에 훨씬 더 풍요로움을 가져왔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더구나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알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 결점으로 나의 전부를 평가할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이 큰 탓이다.
사람들은 흔히 노력하면 결점을 감쪽같이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몇 겹으로 싸매고 또 싸매서 흔적을 지웠으므로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믿는다. 더불어 내가 보는 내 모습이 전부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점은 타인의 눈에 더 잘 띄게 마련이다. 아무리 노심초사하며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결점을 허용하라. 결점이 있으면 고쳐 나가면 된다고 유연한 마음을 가져라.
건축물만 리모델링이 가능한 건 아니다. 우리 삶에도 결점이 있다면 리모델링하면 된다. 그런 생각들이 모이면 마음의 면역력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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