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10.27) -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2007. 10. 27. 오후 1:36:27

글자
2007년 10월 27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제1독서 로마서 8,1-11

형제 여러분,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복음 루카 13,1-9

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처럼 길치가 있을까요? 즉, 저는 길을 잘 찾지 못합니다. 이러한 제가 저도 이상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그렇지, 어떻게 몇 차례 다녀왔던 곳도 잘 찾지를 못할까요? 그렇다면 아무데도 못갈 것 같지요? 하지만 제가 가고 싶은 곳을 전혀 못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자신 있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가 있지요. 저 같은 사람을 위한 기계가 있거든요. 네비게이션이라고…….

이 네비게이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하거든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기계를 따른다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길을 못 찾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머리가 안 되니, 기계라도 잘 따라야 하겠지요.

어제는 어떤 곳으로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2시간 정도의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운전을 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네비게이션을 켜고 네비게이션에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아는 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순간적으로 갈등을 했습니다.

‘이 길은 내가 분명히 아는 길인데, 왜 다른 곳으로 갈까? 혹시 내가 잘못 입력한 것은 아닐까?’

갈등 끝에 제가 아는 길로 선택했습니다. 분명히 아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쪽으로 가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길은 도로 공사 중으로 엄청나게 막히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지요.

‘그냥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데로 갈 걸…….’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안내하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가라고, 또 저쪽으로 가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내 뜻을 먼저 앞세워서 앞으로 가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경로를 이탈했단다.’라면서 마치 우리 삶의 네비게이션처럼 경고 메시지를 남기는데도, 우리들은 자기의 뜻과 세속적인 욕심이 겹쳐져서 그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아니 듣는데도 불구하고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면서 우리들은 그 소리를 그냥 묻어두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민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요.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들어서지 않는 우리들을 주님께서는 포기하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안내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안내 메시지를 듣는 방법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네비게이션을 켜야 제대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주님과의 통로를 만들어주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메시지를 전혀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똑바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재치를 발휘하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1914년 첫 영화를 발표한 이래 ‘황금광시대’, ‘모던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 무성 영화와 유성 영화를 넘나들며 희극의 제왕이라 불린 찰리 채플린. 사회에 대한 비판을 극 속에서 풍자로 풀어낸 그의 재치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일상에서도 반짝이는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 찰리 채플린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총을 든 강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날따라 많은 액수의 돈을 지니고 있던 그는 저항 한번 없이 순순히 강도에게 지갑을 건넸다.

지갑을 손에 든 강도가 돌아서려는 순간 채플린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네. 내가 이대로 돈을 잃고 돌아가면 돈 주인이 내가 돈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나에게 무척 억울한 일이지. 그러니 귀찮겠지만 내 모자에 총을 좀 쏴 주게.”

강도는 순순히 그의 모자에 총 몇 발을 쏴 주었다. 그러자 채플린은 또 다시 강도를 붙잡았다.

“미안하지만 바짓단에도 좀 쏴 주겠나? 그래야 돈 주인이 날 확실히 믿어줄 것 같아서 말일세.”

강도는 다시 그의 바지에 총을 쏴 주었다. 그런데 몇 번을 쏘는 사이 총알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찰리 채플린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강도를 밀쳐 내고 지갑을 낚아 채 달아나 버렸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 다음의 일은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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