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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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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로마서 8,26-30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복음 루카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한 가족이 차를 타고 놀러 가는데 5살 먹은 아들이 갑자기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자 아빠는 학창시절에 배운 것을 기억하면서 아주 복잡하게 설명했지요.
“연료가 연소되면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기계에너지로 바꾸어서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동력을 얻는단다. 후륜의 경우 클러치-변속기-추진축-차동기-액셀축-후차륜 순서로 동력을 전달하여 자동차를 움직이지. 알겠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던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듣던 아들이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자 엄마는 단 한마디로 끝내 버렸습니다.
“응…….빙글빙글!”
엄마의 답도 틀린 것은 아니겠지요? 자동차 바퀴는 ‘빙글빙글’ 도니까요. 더군다나 어린 아들에게는 어려운 설명이 전혀 필요가 없겠지요. 따라서 엄마의 답인 ‘빙글빙글’이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쉽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을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끊임없이 걱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한 번 해보세요.
갓난아기가 젖 먹는 것을 걱정할까요? 아니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까요? 아니면 남들과 달리 장난감 없는 것을 걱정할까요? 아니지요. 만약 이 갓난아기가 먹을 것 입을 것 또는 놀 것을 걱정하고 있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하시겠지요.
“얘! 그건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야. 네 부모가 걱정할 것이지…….”
어쩌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갓난아기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걱정거리가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걱정하고 행동하실 것이지,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갓난아기가 젖 먹는 것, 입을 것, 놀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갓난아기가 엄마 아빠만 함께 있어도 편안해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서 함께 있다는 사실에 편안해하고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진리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걱정과 욕심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님께서 제시하는 길의 정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세우는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참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좁은 길로 가고 있는 지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마세요.
죽음을 이기는 신념(‘좋은생각’ 중에서)
해군 장교였던 한 사나이가 암에 걸려 군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네 번이나 암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는 최후통첩을 했다. “당신은 앞으로 보름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보름이라는 값진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 국회와 백악관으로 달려가 다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대통령은 그가 다시 해군 장교로 북무하는 데 동의했다.
그는 군대에 복귀하자 예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했고, 몸을 아껴도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사병의 일까지 자진해서 맡아 해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늘 ‘숨이 붙어 있는 한 내가 맡은 일을 완수한다.’고 다짐하며 동료나 부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임무에 매진했다. 3년이 지나도 그는 무사했다. 오히려 암의 증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의사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장교는 바로 무적함대로 세계에 용맹을 떨친 미 해군 제7함대 사령관 로젠버그다. 만일 로젠버그가 보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좌절했다면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까? 죽음마저도 물리친 로젠버그의 비결은 특효약이나 기적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신념의 힘이 그런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한 인간의 신념은 죽음보다도 강하며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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