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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수녀들의 이야기....

썰렁해·2005. 10. 11. 오후 7:59:46

죽이는 수녀들의 이야기
갈바리언덕에 서서
된장찌게는 어떻게 끓이는 것인지 알지?
맛있게 끓이려면 마늘을 많이 넣고.....
평범한 어머니와 딸의 대화다.
그렇지만 40대의 어머니가 딸에게 마지막 남기는 유언이었다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한참동안 우울해진다.
늘 이별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지만 매번 임종하였다는 말은 유쾌하지 않다.
이번 경우에는 더욱 당황스럽다.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며 수많은 밤을 전화하다가 병원응급실로 갔다.
거의 숨이 끊어지는 시간이기에 집에서 가족과 사랑의 말을 주고받기를 원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환자의 선택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병원 측의 권유로 위 내시경을 하였다.
분명 환자에게는 내시경은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다.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절박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가족의 갈망에 묻혀졌다.
내시경을 한날,, 김 00님은 돌아가셨다.


췌장암판정을 받고 모현에 연락되었다. 남편과 딸의 지극한 돌봄이 있었다. 방안이 답답하다고 하여서 거실에 나와 자리를 피고 누워계셨는데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는 냄새를 맡으면 먹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딸과 남편은 방안에서 휴대용 가스버너에 식사준비를 한다.
가족이 힘들것 같아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권유하면, 가족모두가 환자분의 아픔의 비교할 수 없다며 수녀들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한다.
집안가득히 가족사진과 예쁜 자신의 사진을 커다랗게 걸어놓고 계신다.
가족간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안에 환자분의 실질적인 고민이 있었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홀로 되는 남편을 걱정하였다. 남편의 입맛이 까다로워 딸이 반찬을 잘못해주면 어쩌나!
그래서 재혼한다고 하면 안된다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내의 음식맛이 그리워 마음이 흔들리면 안된다며, 딸에게 아버지를 부탁하며 된장찌게 끓이는 법을 남기고 돌아가신 것이다.


수녀님!
오늘은 꼭 저녁 드시고 가세요.
그런 날이 있다. 방문한 집에서 물도 잘 안 먹는 저희들에게 환자분과 가족분들이 무엇인가를 권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가끔 섭섭함을 말하기는 하지만 서로 편안하게 관계를 가진다.
그런데 그날은 오래 아픈 끝에 모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환자분이라 방문간 우리도 마음이 환해질 수 있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좀더 좋아지면 강릉에 여행 가자면서, 죽는 다는 것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먼길 떠나는 사람과 아쉽지만 가야할 길을 놓고 모처럼 편안한 대화를 하였다.
촉촉히 대지를 적시는 비가 오는 날,
봄이 되면 나물을 캘 수 있는 들녘,
어린 쑥의 향긋함,
가족의 소중함,
먼저 하늘나라에 간 큰 딸,
도심에서 참 답답하기는 했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아픈중에도 나물을 캐러 들로 나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구나! 하며 환자분과 참 많은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저녁식사를 하자며 잡는다. 평소보다는 강경하게....
단호하게 먹고 가라는 말씀에 “다음에 먹어요”라고 말하며 환자분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날이 환자분과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대화였다.
영안실에 가면 밥을 꼭 먹고 온다. 살아서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한 환자분의 섭섭함을 달래면서....
그날 왜 안먹고 나왔을까? 참 강하게 붙잡았는데.... 살아서 마지막으로 대접하고 싶었던 환자분의 소망을 거절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 뒤로는 환자 분이 강하게 원할 때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영안실에서 먹는 것보다는 여행마지막에 함께 식사하듯이 배웅하는 심정으로 식사를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갈등이 생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꿈꾼다. 호스피스 센터가 생기면 근사한 찻집과 식당을 만들고 싶다고.. 그 곳에서 환자분들과 우아하게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호스피스는
평소에 몰랐던 사람들이 여행의 동반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여행의 순간에....
자기자신과 가족과 세상과 하느님과 화해하고 편안하게 하느님께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을 호스피스라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려고 노력한 환자 앞에 다가가서 일을 해야하는 순간에는 도망가고 싶을때가 있다. 모현에서 호스피스를 받는 사람들이 모두가 아름답게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 말한 김 00님처럼
많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함께 있는 것 외”에는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본인의 성격대로 죽는 것을 호스피스를 한다는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도와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최소한 남편의 재혼 따위는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하였으면 하였지만, 그 정도의 마음의 평화도 주지 못한 순간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많이 우울하였다. 자신이 우울한 것은 그만큼 욕심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난 참 욕심이 많은가보다.


갈바리언덕에 갈등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있을 자신이 있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갈바리 언덕에서 도망갔는지 알겠다.
예수님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무기력한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나선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기에 이런 마음의 갈등이 얼마나 교만 한것인지를 하느님은 말해준다.
“겸손한 영혼에게 실패란 없다”는 설립자 말씀이 떠오른다.
그분의 임종을 도와주는데 실패했다고 스스로 우울해지는 순간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호스피스를 하는 우리에게 실패라는 것은 없는데....
하느님 앞에서 많이 교만했다.
앗! 하느님 죄송합니다.
오늘도 교만한 저의 마음을 다스리고 갈바리 언덕에 서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열심히 부탁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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