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에 갓 올라간 딸아이가 새로 만난 제 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장난이 너무 심하고 좀처럼 가만히 있질 않고 수선을 피워서 정신이 없단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장난을 걸어와 공연히 자기까지 야단을 듣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짖궂게 굴어 같은 반 여학생들의 원성이 높단다.
딸아이는 아마 얌전하고 착실하며, 여자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모범생을 짝으로 맞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짝에 대해 아홉 살짜리 특유의 귀여운 수다를 늘어놓는 딸아이를 보면서 문득 삽십 년 전 내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한끝자락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새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복도로 다 데리고 나가서 키 순서대로 줄을 세워 새로 남녀 짝을 맞추어 주셨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로 짝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웃자란 보리처럼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머리통 두 개 정도는 큰 키를 하고, 머리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깡총한 단발에다 목은 꼭 모딜리아니의 여인상을 떠올릴 만큼 기형적으로 길었다.
지금보다는 다들 사는 것이 어려웠던 때였으므로 영양공급이 원활할 턱이 없는지라 몸피는 수숫대처럼 깡말라 손을 대면 똑 분질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게다가 한쪽 눈은 약간 사팔뜨기였고, 여자 아이답지 않게 인중 언저리에는 늘 누런 콧물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리는 코찔찔이인데다가, 그 때까지도 구구단은커녕 한글도 제대로 떼질 못해 공부는 항상 거꾸로 첫 번째를 도맡아놓던 아이였다. 말도 느려터진데다 약간씩 더듬기까지 했다. 그래서 별명이 '바보 영희'였다.
그런데 새로 짝을 정해 자리를 배치받는 그 날, 문제의 그 영희와 내가 짝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맙소사. 어린 마음에도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는 이 잘못된 만남을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현아, 지원이, 영숙이 이런 아이들과 짝이 되지는 못할망정, 모든 반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와 짝이 되다니. 당연히 내 주둥이는 닷발이나 앞으로 튀어나왔고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날밖에. 모든 것이 정리된 다음,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지금 자기 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 물으셨다.
나는 벼랑 끝에서 구원의 밧줄을 잡은 사람처럼 번쩍 손을 들었다. 육십 명이 넘는 반 아이들 중에 손을 든 것은 오직 나 혼자였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선생님께서도 빙그레 웃으셨다. 옆을 힐끗 보니 내 짝은 여간 낭패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바보라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제 딴에도 몹시 모멸스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짝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지내면서 차츰 정도 들고 친해질거예요." 하시면서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고, 결국 나는 한 학기 동안 영희와 짝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숫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일까. 지내면서 보니 영희는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영희는 마음이 참 착했다.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부릴 법한 새침떨기나 깍쟁이 노릇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제 학용품 같은 것도 언제나 선뜻 빌려 주었다. 말수가 적으니 토닥거릴 일도 없었다. 학기 초에 내가 저한테 저질렀던 패악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무심했다.
오히려 힘든 것은 내쪽이었는데, 한 학기 내내 손을 번쩍 들어 짝을 바꾸어달라고 하던 그 순간의 낭패스러운 영희의 표정 때문에, 나는 계속 미안했고 일종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옛날 일을 자주 떠올리게 되고, 그럴수록 '미안했다'고 사죄해야 할 일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어느 하늘 밑에서 어엿한 어머니이자 아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영희. 내가 교만의 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한 뒤면 어김없이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불쑥 떠올라, 그 특유의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꾸짖는 영희. 그는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네 곁의 못난이를 사랑하라구. 그 못난이가 사실은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수업 중에도 수시로 장난을 걸어와 공연히 자기까지 야단을 듣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짖궂게 굴어 같은 반 여학생들의 원성이 높단다.
딸아이는 아마 얌전하고 착실하며, 여자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모범생을 짝으로 맞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짝에 대해 아홉 살짜리 특유의 귀여운 수다를 늘어놓는 딸아이를 보면서 문득 삽십 년 전 내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한끝자락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새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복도로 다 데리고 나가서 키 순서대로 줄을 세워 새로 남녀 짝을 맞추어 주셨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로 짝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웃자란 보리처럼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머리통 두 개 정도는 큰 키를 하고, 머리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깡총한 단발에다 목은 꼭 모딜리아니의 여인상을 떠올릴 만큼 기형적으로 길었다.
지금보다는 다들 사는 것이 어려웠던 때였으므로 영양공급이 원활할 턱이 없는지라 몸피는 수숫대처럼 깡말라 손을 대면 똑 분질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게다가 한쪽 눈은 약간 사팔뜨기였고, 여자 아이답지 않게 인중 언저리에는 늘 누런 콧물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리는 코찔찔이인데다가, 그 때까지도 구구단은커녕 한글도 제대로 떼질 못해 공부는 항상 거꾸로 첫 번째를 도맡아놓던 아이였다. 말도 느려터진데다 약간씩 더듬기까지 했다. 그래서 별명이 '바보 영희'였다.
그런데 새로 짝을 정해 자리를 배치받는 그 날, 문제의 그 영희와 내가 짝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맙소사. 어린 마음에도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는 이 잘못된 만남을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현아, 지원이, 영숙이 이런 아이들과 짝이 되지는 못할망정, 모든 반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와 짝이 되다니. 당연히 내 주둥이는 닷발이나 앞으로 튀어나왔고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날밖에. 모든 것이 정리된 다음,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지금 자기 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 물으셨다.
나는 벼랑 끝에서 구원의 밧줄을 잡은 사람처럼 번쩍 손을 들었다. 육십 명이 넘는 반 아이들 중에 손을 든 것은 오직 나 혼자였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선생님께서도 빙그레 웃으셨다. 옆을 힐끗 보니 내 짝은 여간 낭패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바보라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제 딴에도 몹시 모멸스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짝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지내면서 차츰 정도 들고 친해질거예요." 하시면서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고, 결국 나는 한 학기 동안 영희와 짝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숫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일까. 지내면서 보니 영희는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영희는 마음이 참 착했다.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부릴 법한 새침떨기나 깍쟁이 노릇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제 학용품 같은 것도 언제나 선뜻 빌려 주었다. 말수가 적으니 토닥거릴 일도 없었다. 학기 초에 내가 저한테 저질렀던 패악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무심했다.
오히려 힘든 것은 내쪽이었는데, 한 학기 내내 손을 번쩍 들어 짝을 바꾸어달라고 하던 그 순간의 낭패스러운 영희의 표정 때문에, 나는 계속 미안했고 일종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옛날 일을 자주 떠올리게 되고, 그럴수록 '미안했다'고 사죄해야 할 일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어느 하늘 밑에서 어엿한 어머니이자 아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영희. 내가 교만의 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한 뒤면 어김없이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불쑥 떠올라, 그 특유의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꾸짖는 영희. 그는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네 곁의 못난이를 사랑하라구. 그 못난이가 사실은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