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1239호 2013. 11. 10]
두 눈 감고 목청껏 주님 찬미 노래
시각장애인 본당 서울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 사랑결음악회 개최

▲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이 마련한 제2회 사랑결음악회에서 에파타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고 있다. 이정훈 기자
두 눈을 꼭 감은 시각장애인들은 목청껏 주님을 찬양했다. 엄숙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합창할 때에는 손으로 분주히 점자 악보를 짚어가며 화음을 맞췄고, 신 나는 생활성가를 노래할 때엔 전문 밴드 못지않은 실력으로 공연장을 들썩이게 했다.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본당인 서울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주임 고형석 신부)은 1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홀에서 '제2회 사랑결음악회'를 열고, 찬양을 통해 하나 된 주님의 자녀임을 확인했다.
시각장애인 성전 신축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이날 음악회는 500여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시각장애인 성가대와 청년 밴드, 생활성가 가수의 다채로운 공연으로 꾸며졌다. 본당 소속 에파타성가대 20여 명은 찬양곡 '참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영원한 빛', '알렐루야' 등으로 지난해보다 한층 향상된 화음을 뽐내며 주님을 찬양했다. 청년 밴드답게 힘있는 연주를 선보인 '플라마 밴드'도 생활성가와 가요를 연주하며 관객의 박수를 자아냈고, 생활성가 가수 황인숙(마리아)씨는 신부전증 수술 등 어려움을 딛고 무대에 서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공연장 입구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꾸민 '마음으로 보는 카메라' 전시도 함께 열렸다. 시각장애인 30여 명이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일회용 카메라로 풍경과 사물, 가족 등을 찍은 작품들은 삐뚤빼뚤한 구도임에도 일상의 소박한 모습을 마음으로 상상하며 담아낸 작품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고형석 신부는 "앞을 볼 수 없음에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느님께 찬미드리는 시각장애인들의 하느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낀 시간이 됐다"며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을 통해 사랑의 물결이 언제나 본당에 흘러넘치길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청년 밴드 '플라마 밴드'
온몸으로 전하는 화음, 불꽃처럼 아름답게
▲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 청년 플라마 밴드가 서울 홍익대 인근 한 연주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저희 밴드 이름처럼 불꽃같이 뜨겁게 주님을 찬양하고 싶어요!"
서울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이 개최한 제2회 사랑결음악회에서 6명의 본당 청년들로 구성된 '플라마 밴드'가 음악으로 시각장애를 딛고 각자의 끼와 재능을 선보여 관객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을 이틀 앞둔 10월 30일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연습실에서 막바지 점검에 한창인 이들을 만났다. 이들의 연주 솜씨는 '보지 못한 채 어떻게 악기를 다룰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보컬 안승준(스테파노)씨는 악기에 뒤지지 않는 성량을 뽐냈다. 그는 이번 생활성가에 랩도 넣어 재미를 더했다고 자랑했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드럼 이승준(대건 안드레아)씨는 연주하기 전 손끝으로 위치를 파악해둔 심벌과 스네어에 정확히 스틱을 내리쳤다. 키보드 김찬홍(대건 안드레아)ㆍ한윤미(아가타)씨와 기타 김기상(안드레아)씨, 베이스 홍종수(베르나르도)씨도 맛깔난 리듬으로 곡의 흐름을 조율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들은 온몸으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단장 김찬홍씨는 "많은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밴드를 하지?' 하고 의아해하지만, 막상 연주를 듣고 나면 어떤 밴드 연주보다 감동하며 환호해준다"면서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수백 번 노래를 들으며 각자 악기에 맞는 음을 체득해 연주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옆 사람 악기 소리로 전체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이들의 연주는 3년 가까이 맞춰온 호흡 덕분에 공연 중 화음이 조금 맞지 않더라도 '애드리브'로 금세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2010년 불꽃이란 뜻의 라틴어 '플라마'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창단한 이들은 본당 청년연합회 소속으로 본당 미사와 성탄 전야 축제 등에서 공연했다. 2011년 평화방송 라디오 장애인한마당 공연과 지난해 제1회 사랑결음악회 등 다양한 무대에 출연해 실력을 뽐내오고 있다.
하지만 본당 신자들이 제대로 된 성전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다 보니 이들은 자신들만의 연주공간은 물론 개인 악기도 하나 없다. 게다가 청년미사가 따로 없어 교중미사 중 어른 신자들과 밴드 음악으로 교류하기도 쉽지 않다. 평균 연령 30대 중반인 이들은 평소에는 맹학교 교사, 안마사 등으로 일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홍대입구역에 모여 일렬로 손을 잡고 연주실로 향한다. 그나마 시력이 조금 남아 있는 단장 김찬홍씨가 단원들을 이끌고 있다.
키보드 한윤미씨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인 작은 능력으로 주님을 찬양하면서 자신감도 얻으니 세상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마음의 눈을 통해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보컬 안승준씨는 "삶의 기준이자 방향을 제시해주는 주님을 따르며, '믿을 구석'이 있는 저희가 불편함 속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찬양하는지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언젠가 악기와 연주실이 생기면 실력을 더 갈고닦아 명동성당에서 자신들의 연주회를 갖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현장 돋보기] 시각장애인들이 알려준 믿음
이정훈 필립보네리(기획취재부 기자)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악기를 연주할까?', '다른 본당 성가대가 하는 음악회랑 다른 게 있겠어?'
지난 1일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 시각장애인들이 선보인 '사랑결음악회'를 찾은 이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내 이런 생각이 기우였음을, 아니 거의 편견이었음을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노래가 시작되자, 점자 악보로 성가를 1년 내내 외우다시피 한 시각장애인 성가대 단원들은 옆 사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완벽히 화음을 맞췄다. 시각장애인 청년 밴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키보드와 드럼, 기타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무대 어디쯤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였다. 그래도 이들은 "우리의 작은 능력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앞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들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다만 마음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했다. 관객들은 느꼈을 것이다. 육체의 한계가 주님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시각장애인 음악회는 다르다. 노래 하나로 어둠의 고통 속에서도 기쁜 이유를 설명해주고, 멀쩡하게 눈뜨고 지내면서도 좋은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바라보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들은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시각장애인들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다.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엉뚱한 것에 얽매여 각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답을 알려줄 것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