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하여

2012. 7. 2. 오후 4:42:43

글자
침묵에 대하여


얼마전에 친구가 말실수를 해서 화낸 적이 있다. 화는 잠깐 냈고 금세 친구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화해했다.

그게 다였다. 그러고는 밀린 원고가 많아서 혼자 한 달여 가까이 칩거했다. 책을 읽다 혼자 산책하고 글을 쓰며 지냈

다.

친구는 종종 잘 지내느냐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때 같으면 "응."하고 한 글자만 보냈을 텐데 뒤에 웃는 모양

의 이모티콘(그림문자)을 덧붙였다. 


서로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이지만, 나의 칩거를 좋았던 관계에 금이 간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일부러 이모티콘을 넣어 보냈다.


나는 말수가 적어서 더러 핀잔을 듣는 축에 속한다. 누군가와 단둘이서 만나면, 들어주는 역할은 잘하지만 맞장구치

며 재잘대는 역할엔 영 젬병이다.


재미있는 대화를 즐기는데 일가견 있는 한 선배와는 둘이 만나는 게 영 어색해서 매번 몇몇이 모일 때만 만난다. 또

한 듣는데 나보다 더 일가견이 있는 말 없는 선생님을 보면 침묵밖에는 존경의 표시가 떠오르지 않아 늘 진땀만 흘

리다 마는 터라, 언젠가부터 만나지 않았다.


나는 대화 중에, 신뢰감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침묵을 사용했다. 내 침묵은 그야말로 열렬한 경청의 방식이

었다. 또 가장 진중한 약속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침묵을 좋은 의미로 써 왔다.


마주한 누군가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 "응응."하며 추임새를 넣기조차 싫어서 침묵했다. 나는 침묵함으로써 그

뜻을 받아들인다는 공감을 표했고, 서로 침묵인 채로 오랜 세월이 흐를 때 상대방이 잘 지낼 거라고 믿는 쪽이었다.


언제든 우리의 침묵을 깨고 좋은 소식이나 나쁜 소식이 날아들거라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시달린다. 침묵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침묵은 어쩌면 무

관심이나 방관이 아니냐고 자꾸 뒤통수에 대고 질타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침묵은 경청과 묵살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포함했다. 내가 경청을 위해 침묵할 때 상대방이 묵살로 이해하고 상심하

면, 나는 어찌해야 하나. 내 침묵이 완고한 묵살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무관심이 아니라 또 다른 열렬함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다. 그 비법이 알고 싶어서, 침묵에 대한 고민과 궁리에 빠졌다.
 

아무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침묵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비겁한 변명이 될 거다. 내 침묵이 정당하려

면 조용히 실천에 옮기면 될 일이며,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실천은 발언이다. 그러니까 침묵이 정당하려면 침묵을 깨

고 발언해야 한다.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 동안에 다른 어떤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꽃이 피었대, 어쩌면 좋아." 같은 말을 하는 동

안에 "00가 지금 도움을 호소한대."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때에. 꽃은 우리가 말하거나 말거나, 연전히 부지런히 피

고 또 지겠지만, 누군가의 절박한 호소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말을 해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을 거다.
 

송찬호 시인은 "말을 해서 우선 감옥을 만들라." 라고 노래했다. 말을 한다는 건 약속을 해 두는 일이고, 약속이라는

감옥 속에 기꺼이 들어갈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거다. 시인은 말이 곧 약속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전달하고 싶어서

'우선'이라는 부사어를 굳이 써 넣었을 거다.

 
이 글을 다쓰고  나면, 내 침묵 때문에 상심했을지도 모를 친구에게 '우선' 전화부터 해야겠다.


                                                                                                                                                              -김소연 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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